단색화는 최근 수년간 한국 미술시장 최고의 인기 상품. 하지만 단색화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인지는 미술계에서도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단색화가 단순히 단색조 평면 회화를 일컫는다면 이는 서양의 모노크롬 회화와 다를 바 없다. 단색화 연구는 한국 미술계에 주어진 과제인 셈이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 화랑에서 이달 18일부터 다음 달 25일까지 열리는 ‘의금상경(衣錦尙絅)’ 전시는 한국의 단색화가 무엇인지 화랑 나름의 답을 제시하는 자리다. 학고재는 이번 전시에 단색화 1세대 작가들을 비롯해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까지 모두 15명을 한자리에 모았다. 여기에는 단색화와 비슷한 작풍을 보이는 중국 작가도 한 사람 포함됐다. 작가들의 출생 연대가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고루 걸쳐있고 작품 수는 55점에 이른다. 이들 사이에는 화려함이나 커다란 크기를 추구하는 서양 추상회화와는 결을 달리하는 동아시아만의 미의식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학고재 측의 설명이다. 바로 ‘작가 내면의 정신을 응축하고 절제해 화폭에 표현하는 태도’다.
그러한 미의식을 드러낸 대표적 작가가 단색화 1세대 작가인 최명영(82)이다. 전시장에선 작가의 2022년작 ‘평면조건 22-710’을 만날 수 있다. 물감을 묻힌 손가락을 캔버스에 직접 눌러서 그린 이 작품에는 회화를 지난한 정신적 수행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작가가 붓을 쓰지 않는 것은 육체가 직접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장승택(64)이나 박종규(57) 등 후기 단색화 작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예컨대 김현식(58)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그림을 그린다. 먼저 투명한 에폭시 수지를 칼로 여러 차례 그은 뒤, 홈에 물감을 바르고 다시 에폭시 수지를 부어서 굳힌다. 이 방법을 반복해 층을 만들면서 회화에 깊이를 더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진명 학고재 이사는 “서구 회화에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인 ‘숭고’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마크 로스코가 작품의 크기로 관람객을 압도해서 이를 표현했다면 김현식은 끝을 알기 어려운 깊이를 더해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인 의금상경은 ‘비단옷 위에 삼옷을 걸치셨네’라는 뜻으로 2,600여 년 전 중국 고사에서 따왔다. 제나라의 귀족 여성이 위나라로 결혼을 하러 가면서 백성의 눈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비단옷 위에 삼옷을 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우정우 학고재 실장은 의금상경 고사가 단색화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면서 “단색화는 그 외형보다 작가들이 결과물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고민에 집중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