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고물가에 '간소한 명절 나기' 대세... "밀키트도 차례상에 올려요"

입력
2023.01.21 15:00
물가상승 탓 설 차례상 비용 4.1%↑
"간편식 활용" 설문 응답 절반 넘어

“파는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는 건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죠.”

경기 용인시에 사는 홍모(84)씨는 1일 대형마트에서 산 냉동만두로 떡국을 끓였다. 함께 신정(新正) 차례상에 올린 동그랑땡과 동태전도 즉석 조리식품 코너에서 사왔다. 수십 번 넘게 쇤 명절이지만, 손수 음식을 만들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이번 설에도 간편식품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홍씨는 20일 “제수용품 가격도 만만치 않고 자식들도 간편한 걸 선호하니 앞으론 서로 부담 없는 방향으로 명절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절 음식 정성은 옛말"

명절 상차림의 간소화 흐름은 해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부상과 필요 이상의 차례상을 과도한 예로 생각하는 인식이 확산한 덕이다. 특히 올해는 고물가 여파까지 겹쳐 상차림에 필수인 식품 가격이 치솟은 탓에 ‘현실적’ 이유로 간편한 상차림을 더욱 선호하고 있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4인 가족 기준 설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이용 시 지난해보다 4.1% 증가한 25만4,000원이 필요했다. 대형마트 역시 2.1% 늘어난 35만9,000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연휴 기간 경북 포항 시댁을 찾을 예정인 이모(51)씨는 “올해 차례상엔 고기산적 대신 명절 선물로 들어온 떡갈비를 쓸 것”이라며 “명절상에 돈과 수고를 꼭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3년 넘게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단촐한 명절 나기’ 문화가 확산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트렌드에 민감한 유통업계는 다양한 ‘밀키트(반조리 음식)’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반응도 좋다. 한 식품업체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고기떡만둣국 밀키트’는 최근 한 달 반 동안 약 1만 개가 팔렸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고향 대구를 방문하지 않은 최모(50)씨는 “밀키트 떡국이나 전도 품질이 좋다고 해 구매할 생각”이라고 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달 27~29일 자사 회원 828명 대상으로 ‘설 차례상 준비계획’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46.7%는 “간편식과 밀키트를 일부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간편식과 밀키트만 이용하겠다” “음식 가짓수를 줄이겠다”는 답변 역시 각각 9.6%, 10.4%를 차지했다. 차례상 준비에 들이는 품과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의 의견이 전체 응답의 3분의 2를 넘은 셈이다.

"과도한 가사노동 저감 효과도"

‘다이어트 차례상’은 가사노동 부담을 줄여주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성균관에서도 차례상 간소화를 꾸준히 권고하고 있다”면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명절의 의미를 떠올리면 간편식을 활용하는 것도 전통문화의 바람직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최다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