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개혁 논의 뜨겁지만 의원 기득권 포기 딜레마 … "여론 압박 없으면 흐지부지"

입력
2023.01.19 04:30
범사련·시민사회연대회의 공동기자회견
표 등가성 보장 등 '3대 개혁 원칙' 제시
민주당 '민주주의 4.0'도 국회서 토론회
의석 희생 우려에 방법론 이견은 걸림돌

보수·진보 시민단체가 한목소리로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등 국회 안팎에서 선거제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개혁의 주체인 국회의원들은 기득권 포기 문제로 속내가 복잡하다. 정치권이 과거의 관성에 머물지 않도록 여론의 지속적인 압박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연대회의), 주권자전국회의는 18일 국회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논의가 과거의 반복이나 퇴행으로 가서는 안 된다"며 "정치공학이 아니라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범사련은 300여 개 단체들로 구성된 보수 시민단체이고, 연대회의는 351개 단체들로 결합된 진보 성향의 조직이다. 공동기자회견에 참여한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개혁과 선거구제 개편이 이념과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존폐와 나라의 흥망이 달린 문제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민단체들은 책임정치를 구현할 선거제도 개혁의 3대 원칙으로 △표의 등가성(비례성) 보장과 승자독식의 기득권 구조 타파 △특정 정당에 의한 일당 지배 체제 해소 △정당공천의 문제점 개선 및 유권자의 참여권 확대를 제시했다. 이들은 "개혁 논의를 회피하거나 좌초시키려고 하는 세력, 정치인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며 "정치권의 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감시·견제하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66명이 참여 중인 연구모임 '민주주의 4.0'도 같은 날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원칙과 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민주주의 4.0'의 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정태호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언급하는 등 2023년은 정치개혁을 해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며 "대표성·비례성·지역 독점구조 타파라는 세 가지 기준을 놓고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혁에 적극적인 일부 의원들과 달리 대다수 의원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겉으로는 선거의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는 개혁 방향에 찬성하면서도 속으로는 선거제 개혁이 자신의 지역구에 미칠 영향을 놓고 계산기부터 두드리는 모습이다. 내년 총선을 1년 3개월 앞두고 선거 룰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과거에도 선거제 개혁은 지역과 선수(選數)에 따라 같은 당 의원들끼리도 이해관계가 달라 당론을 정하기 어려웠다. 또 개혁의 방법론이 중대선거구제냐, 권역별 비례제냐에 따라 여야에 미치는 득실이 다르다는 점도 선거제 개혁이 고차 방정식으로 꼽히는 이유다.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가진 상대적 우위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은 텃밭인 영남에서 적지 않은 의석을 뺏기는 반면, 호남에서는 정의당과 2등 다툼을 해야 해 민주당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입장이다. 권역별 비례제가 도입되면 의원 정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여론이 과연 찬성하겠느냐는 점도 난관이다. 이런 추세면 차기 총선 선거구 획정의 법정 시한(4월 10일) 내 선거법 개정 가능성은 낮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선거개혁을 정치권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론장에서 선거제 개혁의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원들 스스로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혁을 추구함으로써 더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도록 유권자들이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소속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정치개혁은 몇몇 의원들의 바람으로 되지 않는다"며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절실한 요구와 압력이 없으면 흐지부지될 가능성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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