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농촌유학 예산 10억 원은 삭감하고, 서울시의원 연수 및 교육 예산은 얼마로 책정하셨나요?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는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짓밟으며, 자신들의 연수를 위해선 얼마나 쓰려고 하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최근 서울시의회 신문고에는 이 같은 내용의 민원이 올라왔다. 올해 들어 18일까지 신문고에 등록된 6건의 민원 모두 서울시교육청의 '농촌유학'을 신청한 학부모가 제기했다. 2021년 시작된 농촌유학은 서울 초·중학생이 일정 기간 농촌 학교에 다니면서 생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대표 정책인 농촌유학이 2년 만에 좌초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시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돼서다. 지원금 지급이 불투명해지자 농촌유학을 준비한 학부모들은 속을 태우고 있다.
시교육청은 다음 달 임시회를 통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통상 6월 정례회에서 추경 논의가 이뤄졌던 점을 감안하면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농촌유학이 시작되는 3월까지 시교육청과 시의회가 합의를 못 하면 참가자들은 1년에 최대 410만 원인 지원금을 제때 받지 못하게 된다.
19일 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시의회는 시교육청 예산에서 농촌유학 관련 사업비 10억 원이 편성된 생태전환교육기금 운용계획을 삭제했다. 일반 재원으로 편성할 수 있는 정책인데도, 기금을 설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시교육청이 사업 예산을 교육비특별회계(교특회계)로 편성하면 사업비 변동이 발생할 경우 추경을 거쳐야 수정할 수 있고, 기금은 시교육청 내 기금운용심의회에서 변경할 수 있다. 즉 기금은 교특회계에 비해 시교육청의 재량이 크다는 얘기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농촌유학 신청 학생 수에 변동이 많고, 예측이 어려운 부분이 있어 지난해부터 기금으로 운영했다"며 "시의회에서 방식의 문제를 지적했으니 추경에서는 교특회계로 편성해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산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당장 지난해 2학기 농촌유학 참가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올해 1, 2월 지원금 8,800만 원은 전남교육청에서 우선 지급할 예정이다. 일단 빌려 쓴다는 얘기다. 급한 불은 꺼도 올해 3월부터 유학 예정인 250여 명에게는 월 30만 원과 초기 정착금 50만 원 지급 방법이 불투명하다. 올해 3~12월 필요한 예산은 8억7,000만 원이다.
예산 삭감 소식이 알려지자 현재까지 1명이 참가 신청을 철회하기도 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달 12일 참가자들에게 예산 삭감 관련 안내 문자를 발송한 뒤 전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유학 시작 때 지원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예산이 편성되면 지급할 수 있다고 안내 중"이라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지난해 8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의 초등학생이 한 학기 정도는 농산어촌으로 유학을 다녀올 수 있도록 '준의무화'했으면 한다"며 "지난해까지 전남과 진행했던 것을 올해는 전북, 강원, 경남·북 등 전국으로 확대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예산이 삭감된 탓에 전북을 제외한 다른 지방교육청과는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농촌유학 참가자는 2021년 1학기 81명에서 지난해 2학기 263명으로 3배 이상 늘었고, 참가자 만족도가 91%에 이를 만큼 호응이 좋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해외 언론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의미 있는 사업이라 시의회와 협력해 조속히 추경 예산을 편성,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