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모(25)씨는 올 설 연휴에 고향을 찾는 대신 친동생과 일본 여행 계획을 세웠다. 무엇보다 만료일이 다가온 여권을 재발급받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그는 구청에 갔다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민원 창구 앞은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김씨는 17일 “재발급 신청은 물론 여권이 실제 발급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다”며 “예매한 항공권에 여권번호를 입력하지 못해 예약이 취소될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첫 설 연휴를 맞아 여행객들이 공항으로 몰리고 있다. 3년간 지속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막혀 해외에 나가지 못한 ‘보상심리’가 한꺼번에 분출한 것이다. 코로나19 기간 ‘비대면 명절’에 익숙해지면서 연휴 때 고향 방문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돼버린 최근 흐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이번 연휴 기간(20~24일) 하나투어 해외여행 패키지 예약자는 1만5,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0배 증가했다. 모두투어의 해외여행 예약자도 1만3,000명으로 90배 폭증했다.
당연히 공항 이용객도 크게 늘 전망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1~24일 48만여 명이 공항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설 이용객(2만7,986명)보다 17배 뛴 수치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20년 설 연휴 당시 여행객의 절반 수준”이라면서도 “해외여행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는 추세는 맞다”고 설명했다.
해외여행 욕구가 확산하면서 관공서 여권 발급 창구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지난달 중순을 전후로 여권 재발급 민원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도 “코로나19 기간 하루 70건 정도였던 여권 관련 민원이 지난해 11월부터 400~500건씩 들어오고 있다”며 “발급이 지연돼 ‘긴급여권’을 신청하는 경우도 하루 30건 안팎”이라고 했다.
고물가가 지속되고 있으나 시민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그만큼 해외여행에 목말랐다는 의미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명절에 고향을 굳이 찾지 않는 트렌드도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
한국인들의 단골 여행지인 동남아시아 외에 일본 관광객 비중이 큰 점도 눈에 띈다. 거리두기 해제 후 첫 명절인 지난해 추석 때만 해도 일본 방문은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자 1순위 해외여행 국가가 됐다.
직장인 김모(29)씨도 설에 친구와 함께 일본 온천을 방문할 예정이다. 고향에 있는 부모, 친척과는 설 당일 화상전화로 안부 인사만 하기로 했다. 김씨는 “부모님도 설에 꼭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시는 것 같다”며 “항공권ㆍ숙소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해외에 나가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 크게 아깝지 않다”고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