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숙' 기시다 끌어내리기 시작?...침묵 깬 스가 행보에 일본 '들썩'

입력
2023.01.17 16:40
월간지 인터뷰 등에서 "파벌 정치" 비판
아베 정권 때부터 사이 안 좋아
낮은 지지율 기시다 내각 흔들지 주목


“스가가 남의 평가를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재미있어졌네.”(일본 자민당 관계자)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를 두고 자민당에서 흘러나온 얘기다. 스가 전 총리는 새해 들어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연일 비판하고 있다. 언행이 신중한 스가 전 총리로선 이례적 행보다. 그는 2021년 코로나19 후폭풍을 비롯한 국정 난맥상에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한 이후 침묵해 왔다.

'기시다 흔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인지를 놓고 관측이 쏟아져 나오면서 도쿄 나카타초(국회의사당이 있는 일본 정치 중심지)가 술렁이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30%대 안팎의 저조한 지지율의 늪에 빠진 상태다.

스가 "기시다 총리 파벌 수장 계속... 인사도 파벌과 논의해 결정"

스가 전 총리는 지난 10일 발매된 월간지 분게이슌주 2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기시다 총리는 아직도 파벌(기시다파) 회장을 계속 맡고 있다. 인사도 파벌과 논의해 결정한다"고 꼬집었다. 일본 총리는 취임 후 파벌과 거리를 두는 것이 관행이었다. 스가는 소속 파벌이 없다.

스가 전 총리는 최근 베트남 방문 중 기자들에게 “국민 목소리가 정치에 도달하기 어려워져 우려된다”며 기시다 총리 리더십을 거듭 비판했다. 스가 전 총리의 각 세우기를 두고 “일본과 정권의 앞날을 걱정하는 스가가 행동을 시작한다는 신호”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기시다-스가, 아베 내각 때부터 사이 나빠

기시다 총리와 스가 전 총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스가 전 총리는 아베 신조 정권의 2인자(관방장관)였다. 2019년 아베 당시 총리는 기시다 총리를 자민당 간사장으로 발탁하려 했지만 스가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이듬해 아베 전 총리 사임 이후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스가 전 총리가 기시다 총리를 누르고 압승해 총리에 올랐다. 스가 전 총리는 “기시다는 전혀 의지할 수 없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며 박한 평가를 내렸다.

다음엔 기시다 전 총리가 웃었다. 2021년 스가 내각이 궁지에 몰리자 기시다 총리가 가장 먼저 총재 선거 출사표를 던지며 ‘스가 끌어내리기’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등을 돌리면서 스가 전 총리는 총리직 퇴진을 선택했다.


"'기시다 끌어내리기' 시작됐다" G7 정상회의가 정국 분수령

껄끄러웠던 과거에도 불구하고 스가 전 총리는 기시다 정권 내내 침묵을 지켰다. 스가 전 총리가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을 두고 "'기시다 끌어내리기'가 시작됐다는 뜻"(일본 전직 공직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강력한 ‘포스트 기시다’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다만 스가 전 총리가 총리 자리 복귀를 노리는 것인지, ‘킹 메이커’가 되기를 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기시다 총리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올해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정국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니시닛폰신문은 “앞으로 반년 안에 자민당이 크게 흔들릴 것이고, 스가는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자민당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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