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도, 밥값도 감당 힘들어요"… '고물가'에 허리띠 졸라 매는 자취생들

입력
2023.01.1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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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원룸, 관리비 인상 요구 줄이어
고물가 핑계만... 세입자는 내역 깜깜이
학생식당마저 축소 운영... 끼니 걱정도

“5평(16.5㎡)도 안 되는 원룸에 관리비가 16만 원이라니요.”

서울 금천구에서 2년째 자취 중인 대학생 김나영(22)씨의 하소연이다. 얼마 전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은 11만 원이던 관리비를 5만 원 더 올리겠다고 갑자기 통보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주변 시세와 고물가 때문”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김씨는 16일 “월세 35만 원에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인상된 관리비까지 충당하려면 아르바이트를 늘릴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물가 바람 타고 '관리비 인상' 기승

고공행진 중인 물가가 좀처럼 꺾일 줄 모르면서 대학생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학교 근처 자취생들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겨울방학에도 학업과 취업 준비 등을 위해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학생이 적지 않은데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 밥값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특히 최근엔 대학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소규모 원룸의 ‘관리비 인상’ 요구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한국일보가 한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 등록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 전용면적 33㎡(10평) 이하 원룸 매물(임대차 신고 대상 기준 이하) 150여 개를 분석한 결과, ㎡당 관리비는 약 6,000원으로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인근 아파트(2,372원)의 두 배가 넘었다.

인상 요인이 없는 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ㆍ수도ㆍ가스요금은 전년 대비 12.6% 증가했다. 최저임금이 2년 연속 5%씩 올라 건물 관리에 필요한 인건비도 상승했다. 서대문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대면수업 재개로 학생들이 몰리고 고물가ㆍ고금리도 지속돼 전반적으로 월세ㆍ관리비가 올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소형 평수의 관리비 내역은 사실상 ‘깜깜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과 달리 대학생들이 많이 사는 50세대 미만 빌라, 연립주택 등은 세입자에게 항목별 관리비 내역을 고지할 의무가 없다. 보증금이나 월세는 인상률 상한제에 걸려 집주인 마음대로 올리기 힘들고, 또 월세가 30만 원을 넘으면 임대차 거래 신고 대상이 된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관리비가 아무 제약 없이 손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셈이다.

2020년 7월 ‘임대차 3법 개정’ 이후 월세는 신고가 이하로 두는 대신 관리비만 올리는 ‘꼼수’가 늘었는데, 고물가 바람을 타고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윤성노 전국세입자협회 주거상담팀장은 “관리비를 인상하는 식의 편법 계약을 호소하는 민원과 상담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값싼 학생식당 줄고, '1000원 조식'도 중단

대학생들에겐 사는 문제 못지않게 먹는 것도 고민이다.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던 학생식당들이 치솟는 식재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앞다퉈 가격을 올리거나 축소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해 4월 학생식당 메뉴 가격을 800~1,000원 인상했다. 또 올해 봄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는 4,000원짜리 조식을 기숙사 내 두 개 식당 중 한 곳에서만 판매할 계획이다. 연세대도 지난해 11월 국제캠퍼스의 학생식당 운영을 중단하려 했다가 학생들의 반발에 밀려 올 3월 이후 재검토하기로 했다. 학생들의 호응이 컸던 고려대와 성균관대의 ‘1,000원 조식’ 역시 방학 기간 운영이 중단됐다.

결국 학생들이 배를 채울 곳은 편의점 등에서 파는 간편식뿐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고려대생 김모(25)씨는 “부모님께 번번이 손 벌리기가 죄송해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성균관대 재학생 이모(25)씨도 “소소한 낙이었던 치맥(치킨+맥주)을 즐기기는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를 하나 더 알아보고 있다”고 푸념했다.

최다원 기자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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