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공시 대상 기준액(공시 기준액)을 현행 50억 원에서 11년 만에 100억 원 이상으로 되돌린다. 기업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지만 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위는 16일 기업 공시 부담을 완화하는 '대기업집단 공시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2000년 도입 당시 100억 원에서 2012년 50억 원으로 내려갔던 공시 기준액이 다시 100억 원으로 오른다. 또 내부거래액이 자본총계·자본금 중 큰 금액의 5% 이상이더라도 5억 원을 밑돌면 공시 대상에서 빠진다. 대기업집단 계열사 입장에선 공개해야 할 내부거래가 줄어들게 된다.
8개 항목의 공시 주기는 분기별에서 연 1회로 줄어든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자금 대여·유가증권 거래·기타자산 거래 현황 △국내 계열사 간 주식 소유 현황 △계열사 간 자금 거래·유가증권 거래·기타자산 거래·담보 제공 현황 등이다. 비상장사는 '임원의 변동' 항목을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공정위는 공시 의무 위반에 따른 과태료도 낮추기로 했다. 기업이 공시 의무 위반 후 3일 내에 정정할 때 깎아주는 폭은 과태료의 50%에서 75%로 커진다. 위반 후 7일 이내, 15일 이내, 30일 이내에 시정하면 각각 50%, 30%, 20%를 감경한다. 기업이 잘못 공시한 내용을 스스로 고치도록 유도하는 차원이다.
공시제도 개선은 대부분 경제계가 오랜 기간 요구한 사안들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정과제에 담긴 내용이기도 하다. 특히 공시 기준액은 제도 도입·변경 때와 비교해 기업·경제 규모가 커진 점을 고려해 높여야 한다는 기업 측 요구가 강했다.
이번 제도 개편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내부거래 사실을 공개했던 2만 건(2021년 기준) 가운데 앞으로 대상에서 빠지는 50억 원 이상~100억 원 미만 거래는 약 4,000건이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공시 기준액을 50억 원으로 강화해 일감 몰아주기를 더욱 촘촘하게 감시하겠다는 2012년의 개편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경제검찰인 공정위가 정책 기조를 재벌·대기업 위주로 바꾸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원철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내부거래 감시가 약화된다는 우려는 과하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