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박진주가 느낀 고통 [인터뷰]

입력
2023.01.19 09:04
박진주, '영웅'으로 스크린 복귀
윤제균 감독·유재석에 전한 감사 인사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밝은 이미지의 소유자인 배우 박진주는 매 작품을 고통받으며 촬영했다. 칭찬을 받아도 고통스러웠고 혼나면 그 고통은 더욱 커졌다.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는 과정이 반복되며 그는 점차 단단해졌다.

박진주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뮤지컬 영화 '영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작품이다. 박진주는 독립군을 보살피는 동지 마진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영웅'이 안긴 고민

박진주는 '영웅'을 위해 연기하는 동안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언제 이렇게 아름답게 빛나면서 슬픈 에너지를 내뿜어볼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단다. 그러나 마진주를 그려내는 과정 자체는 쉽지 않았다. 그는 "마진주가 마냥 웃긴 캐릭터가 아니다. 너무 밝아도, 무게를 잡아도 안 됐다. 밝게 있다가도 현실이 묻어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캐릭터에 대한 답을 안 내렸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을 글로 정의할 순 없잖아요.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니까요. 감독님, 배우들과 균형을 맞추며 마진주를 필요한 인물로 만들어갔죠."

노래와 깊은 감정 연기를 해야 하는 장면은 많은 고민을 안겼다. 박진주는 마진주로 변신해 유동하(이현우)와의 슬픈 사랑을 그려내야 했다. "노래해야 하는데 발음이 안 될 정도로 눈물 나고 슬펐다"는 박진주는 당시 멘탈이 나가는 걸 느꼈다. 그러나 이 장면은 결국 많은 이들의 노력 속에 완성도 높게 그려졌다. 박진주는 "진짜 감정이 들어가야 관객분들도 날것의 질감으로 느끼시는 듯하다. 우리의 진짜 고통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더 좋은 장면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촬영장 빛낸 윤제균 감독과 배우들

'영웅'은 박진주가 큰 애정을 품고 있는 영화다. '출연 안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작품'이라는 게 박진주가 사용한 표현이다. 그는 "스토리도,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만든 뮤지컬 영화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더불어 내가 대학교 때 뮤지컬을 전공했어서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정성화 김고은 등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점에서도 큰 끌림을 느꼈다고 했다. 메가폰을 잡은 윤제균 감독은 자신에게 매우 크게 느껴지는 존재였단다. 박진주는 "감독님께서 나라는 배우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했다"고 전했다.

첫 촬영 날 박진주는 긴장감을 안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오감을 세워 연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안중근으로 분한 정성화의 모습을 본 후의 일이다. 박진주는 "모니터 속에 안중근 선생님이 계시더라. '실제 상황이다' 싶었다. 많은 단련을 통해 본 모습을 죽여가며 만든 듯한 아우라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정성화가 평소 장난을 좋아하고 젠틀한 성격이라고 설명한 박진주는 "영화를 보면 선배님께서 얼마나 큰 무게감으로 역할을 해내셨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정성화 외에도 많은 이들이 촬영 현장을 빛냈다. 윤 감독은 "천재야" "더할 게 없어" 등의 칭찬으로 배우들에게 용기를 줬다. 박진주는 마두식을 연기한 조우진의 노래에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예능으로 시선 모은 박진주

박진주는 MBC '놀면 뭐하니?' 고정 멤버로 활약하며 예능계에서도 대세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는 "'유령' 개봉이 미뤄지고 여러 활동을 하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동안 나도 '영웅'을 조금 더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된 듯하다"며 뿌듯한 마음을 내비쳤다. 개봉 후 무대인사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보며 기쁨을 느꼈단다. 박진주는 "영화 촬영을 할 때 감독님께서 '항상 진심을 다해 활동하고 열심히 하면 많은 분들이 알아줄 때가 올 거야'라고 하셨다. 감독님의 말이 힘이 됐다"고도 말했다.

현재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는 예능 출연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는 "많이 떨렸고 내가 예능을 잘 못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전에는 더 보수적이기도 했다. 내 한계를 스스로 설정했던 듯하다. 안 그래도 재밌는 캐릭터라 더 조심한 부분도 있다. 예능에서까지 재밌게 하면 드라마,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몰입하기 어려우시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도전을 하지 않으면 계속 나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박진주를 격려했고 그는 용기를 냈다.

박진주의 목표

박진주는 예능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해진 상황이라고 했다. '놀면 뭐하니?'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유재석은 그를 응원해 줬다. 박진주는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 지금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고 믿는다. 박진주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의 부모님 역시 행복해하는 중이다. 아버지는 박진주에게 "내 삶이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다"라는 말까지 했다.

박진주에게 연기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매 작품을 하며 고통을 느끼지만 연기하지 않는 게 더 고통스럽다. 연기를 할 때 고통보다 행복이 더 크기 때문에 연기를 계속 하지 않나 싶다"고 했다. 자신을 보고 즐거워하거나 공감하는 이들의 모습에 기쁨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박진주는 앞으로도 촛불처럼 자신의 몸을 태워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기길 원한다. 그의 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 제가 현실에 있을 법한 친근한 느낌의 배우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활동하는 제 모습을 보며 많은 분들이 꿈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저 친구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 같은 느낌으로요."

한편 '영웅'은 지난달 21일 개봉했다.

정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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