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이 사라졌다] 세신사 이은용씨의 전성시대
4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은평구 불광역 인근 명진목욕탕. 남탕 탈의실에선 목욕관리사(세신사) 이은용(61) 씨가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TV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아직 손님을 못 받았다. 요즘 목욕탕엔 당최 손님이 들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때 빼고 광내는 연초라 욕탕 안이 바글바글 했겠지만, 이 시각 남탕 안에서 목욕 중인 손님은 네다섯이 전부다. 함께 일하는 이발사도 하루를 공치기는 매한가지. 이발사는 이씨 옆에 아예 자리를 틀고앉아 함께 TV를 보는 중이다.
이씨는 "요즘은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번다"고 말하며, 목욕관리사로서 누렸던 '전성시대'를 털어놓았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20년 전. 청계천에서 옷 다리는 일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목욕탕을 인수한 김문권(69)씨에게 스카우트를 당해 이 세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당시엔 그의 직업이 '때밀이'로 불릴 때였지만, 수입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톡톡했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주말엔 보통 열댓 명의 손님이 이씨를 찾았고, 손님 받느라 끼니를 거를 정도로 바쁠 때가 많았단다. 때를 밀러 오는 이들은 대부분 단골손님이었고, 이사 갔다가 세신을 위해 명진목욕탕(대조동)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었다.
그러나 웬만한 아파트에 욕실이 두 개씩 들어서고, '탕에 몸을 담근 뒤 때를 미는 것'이었던 목욕의 정의가 '샤워로 몸을 씻어내는 행위'로 바뀌었다. 그러자 서서히 때 미는 손님의 발길이 잦아들었다. 그래도 일당 정도 건질 수준은 그냥저냥 유지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 이후 목욕관리사 업황은 완벽하게 된서리를 맞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아예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고, 대면 접촉을 꺼리는 문화가 3년 이상 이어지면서 '때 미는 행위' 자체가 아예 사람들 머릿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코로나19 이후 동네 목욕탕의 쇠퇴와 함께 급속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는 직업 목욕관리사. 목욕탕을 찾는 손님들의 때를 미는 게 주업인 서비스 직종이다. 사실 이 직업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됐다. 1970년 10월 28일 한 신문기사에 '세운상가의 남성사우나탕에서 일하는 때밀이’가 언급된 것으로 볼 때, 최소 50년 전부터 '때를 미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이 존재했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수십 년 넘게 정식 명칭 없이 때밀이로 비하되고, 때론 세신사로 불렸던 이 직업이 제 이름을 갖게 된 지는 비교적 최근이다. 2007년 통계청은 한국표준직업분류 개정안을 통해 기존의 '욕실종사원' 직업 명칭을 '목욕관리사'로 변경했다. 하나의 전문 직업군이 된 셈이다.
목욕관리사가 전문직 못지않게 잘 나가던 때도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취업난이 이어지던 2000년대 초반, 일한 만큼 벌고 안정적인 직업인 목욕관리사가 주목을 받았다. 현재 서울 영등포에서 목욕관리사를 양성하는 중앙목욕관리교육원 조윤주(60) 원장은 “2003년부터 세신사 일을 했는데, 당시 세신사들은 월에 최소 300만원 이상, 평균 400만~450만원 정도는 벌었다”고 회고했다. 2003년이라면,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 평균이 2,489만원(월 200만원·잡코리아 통계)일 때다.
서대문구 일대 목욕탕에서 40여년간 세신사로 일한 이모(59)씨에게도 아름답고 찬란했던 화양연화의 시절이 있었다. 그가 세신 일을 시작한 것은 열일곱 살 때. 기술이라도 배워야겠다며 시작한 일은 어느덧 평생의 업이 됐다. 한창 때는 주말 기준 하루 30명의 손님을 받았고, 적지 않은 수입을 벌 수 있었다. 1990년대엔 지인 중에 일본이나 미국으로 세신사를 하러 떠난 경우도 있을 정도로, 외국에서까지 기술자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때밀이 관광'을 오기도 했다.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서 목욕하는 문화가 자리잡으며 목욕탕 숫자가 점차 줄었기 때문이다. 목욕관리사를 찾는 수요도 점점 줄어들었다. 은평구 용광사우나 주인 김종겸(64)씨는 목욕관리사를 따로 둘 수 없는 상황이어서 직접 세신 업무까지 맡고 있다. 그는 “2017년 학원을 다니며 세신 일을 배웠다”며 “목욕탕 손님이 갈수록 줄어 세신사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목욕관리사를 양성하는 학원과 협회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았던 학원 중 하나인 동대문목욕관리학원은 지난해 8월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았다. 한국목욕관리사협회 역시 신용정보회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폐업 상태다. 하루에 20명 정도 수강생이 찾던 중앙목욕관리교육원도 팬데믹 이후 수강생이 5명 정도로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조치를 목욕관리사들이 직접 이행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2021년 3월 정부는 목욕탕을 집단감염 취약지로 규정하며 ‘목욕장업 특별방역대책’을 시행했다. 이용자와 종사자는 목욕탕 내에서 사적 대화를 할 수 없고 때를 밀 때도 마스크 착용을 해야했다. 목욕관리사들은 “열기 있는 탕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육체노동을 하니 고역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종사자들은 주기적으로 코로나 선제검사도 받아야 해, 일하다 말고 보건소에 코를 찌르러 가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제 이 직업은 정말 멸종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걸까? 아직은 그렇게 단언하긴 어렵다. ①목욕 문화의 변화 ②코로나19라는 칼바람을 연이어 맞았음에도, 목욕관리사의 명맥은 가늘지만 꾸준히 유지되는 분위기다. 시원하게 때를 밀고 싶어하는 수요가 소수나마 남아있기 때문이다. 12일 찾은 세신 교육학원 중앙목욕관리교육원에서는 조윤주 원장이 수강생 2명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학원은 코로나19로 2년간 휴업했다가 작년 4월 다시 문을 열었다. 조 원장은 “거리두기가 해제됐고, 학원비를 50% 할인했음에도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수강생이 반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남들은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했지만, 그가 학원을 다시 연 이유는 바로 '1인 세신샵'에 기대를 걸기 때문이다. 1인 세신샵은, 대중탕에 가는 것은 꺼리지만 세신을 받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맞춤 목욕탕이다. 독립된 공간에서 목욕하고 세신까지 받을 수 있어, 조용하게 휴식을 즐기려는 이들을 중심으로 최근 수요가 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여성전용 1인 세신샵 관계자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평일과 주말 관계없이 예약이 항상 가득 찬다”고 답했다.
집에 따로 목욕시설을 두기 어려웠던 시설엔 목욕탕이 '청결'을 위한 곳이었지만, 이제는 ‘건강’과 ‘휴식’이 강조되는 일종의 레저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최근 목욕업 트렌드도 이런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개업한 목욕업장 104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이 중 61곳(59%)이 △헬스장 내 목욕탕 △1인 세신샵 등 기존에 없던 복합 문화공간 형태의 목욕탕이었다.
세신 20년 경력의 조윤주 원장은 한국 고유의 세신 문화도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사지와 세신을 병행하는 등 우리 업계도 적극적으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종사자 대부분이 떠나고, 남은 소수만이 변신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세신 업계. 자본이 유입되고 젊은 피가 들어오면, 다시 세신사들의 전성시대가 찾아올 수 있을까?
▶'목욕탕이 사라졌다' 몰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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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청계천 배달하며 품었던 목욕탕의 꿈, 이제 놓아주려 합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1116070002790
②목욕업 최전성기는 2003년... 통계로 본 대중탕 흥망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1115240002597
③망해도 폐업 못하는 목욕탕의 속사정… "철거비만 수천만원"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1611240004703
④때 밀어 떼돈 벌던 시절이 있었다... 영광의 세월 지나온 세신사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1611170002245
⑤공중위생 덕에 흥한 목욕탕 '팬데믹 위생' 탓에 사라진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1617130001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