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농협 조합장 손에 700조가…벌써부터 과열·혼탁 선거 조짐

입력
2023.01.17 04:00
11면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D-50]
금품 제공·사전선거운동 적발 잇따라
"2억 쓰면 낙선, 3억 쓰면 당선" 회자
국회의원이나 시장보다 힘센 조합장

3월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벌써부터 혼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전국적으로 금품과 향응 제공 사례가 잇따라 적발되는 상황에서 설 연휴까지 앞두고 있어, 부정 선거운동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 조합장 임기만료일(3월 20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모든 기부행위가 금지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전남의 한 농협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 A씨가 조합원 집을 방문해 “이번 선거 한 번만 도와달라. 일할 때 힘드니까 막걸리라도 사서 드시라”며 현금 100만 원을 건넸다가 선관위에 적발됐다. A씨는 지난해 9월 추석 연휴에도 3만 원 상당의 굴비선물세트를 조합원 215명(650만 원 상당)에게 제공한 혐의도 있다. 경북 고령경찰서도 축협 조합원 14명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현금 480만 원을 살포한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 B씨를 이달 초 입건했다.

물품 찬조나 식사 제공도 법에 저촉된다. 지난달 대전 유성구에선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 C씨가 조합원들이 속한 노인회와 다른 조합원 1명에게 포도 4상자(13만3,000원 상당)를 건넸다가 고발 조치됐다. 같은 달 충남 아산시에서도 입후보 예정자를 위해 조합원 4명에게 식당에서 6만9,250원어치 음식을 제공한 조합원 D씨가 감시망에 걸렸다.

경북 영천시에선 조합원 집을 찾아다니며 선거운동한 입후보 예정자의 배우자 E씨가 고발 당했다. 후보자 외에 선거운동을 해선 안 될 뿐 아니라, 후보자라고 해도 단순 출마 의사 표시를 넘어 직접적으로 지지를 호소하면 사전선거운동 금지 위반으로 간주된다.

이달 6일 기준 전국적으로 불법 선거운동 적발 건수는 고발 15건, 경고 31건 등 총 46건으로 집계됐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후보자 간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위법 행위가 급증하는 경향이 있어, 적발 건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2019년 제2회 선거에선 기부행위 273건, 비방ㆍ허위사실 공표 41건 등 적발 건수가 744건이나 됐고, 2015년 제1회 선거 때도 867건에 달했다.

이처럼 조합장선거가 돈 선거로 얼룩지는 가장 큰 이유는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전국 농협과 축협, 수협, 산림조합 수장은 풀뿌리 지역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다. 농협의 경우 전국 조합장들이 주무르는 금융자산(예금액ㆍ대출액 합계)만 700조 원이 넘는다. 수협은 68조 원, 산림조합은 10조 원 규모다.

조합장은 임기 4년간 직원 인사와 예산은 물론, 예금과 대출 같은 신용사업, 생산물 판매와 유통 등 각종 사업에서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 농어촌 지역에선 웬만한 국회의원이나 시장보다 힘이 세다는 평가도 나온다. 게다가 고액 연봉 및 수당도 챙길 수 있다. 조합장 평균 연봉은 1억1,0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당선만 되면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금품·향응을 제공하거나 경쟁 후보를 허위 비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억 원 쓰면 떨어지고 3억 원 쓰면 당선된다”는 뜻에서 ‘2락3당’이라는 표현이 회자될 정도다. 선거 분위기가 혼탁해지면서 신인 후보들조차 빨리 인지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불법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용희 전국농민회총연맹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선거운동 과정이 ‘깜깜이’ 상황이라, 일부 후보자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