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벌써부터 혼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전국적으로 금품과 향응 제공 사례가 잇따라 적발되는 상황에서 설 연휴까지 앞두고 있어, 부정 선거운동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 조합장 임기만료일(3월 20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모든 기부행위가 금지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전남의 한 농협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 A씨가 조합원 집을 방문해 “이번 선거 한 번만 도와달라. 일할 때 힘드니까 막걸리라도 사서 드시라”며 현금 100만 원을 건넸다가 선관위에 적발됐다. A씨는 지난해 9월 추석 연휴에도 3만 원 상당의 굴비선물세트를 조합원 215명(650만 원 상당)에게 제공한 혐의도 있다. 경북 고령경찰서도 축협 조합원 14명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현금 480만 원을 살포한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 B씨를 이달 초 입건했다.
물품 찬조나 식사 제공도 법에 저촉된다. 지난달 대전 유성구에선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 C씨가 조합원들이 속한 노인회와 다른 조합원 1명에게 포도 4상자(13만3,000원 상당)를 건넸다가 고발 조치됐다. 같은 달 충남 아산시에서도 입후보 예정자를 위해 조합원 4명에게 식당에서 6만9,250원어치 음식을 제공한 조합원 D씨가 감시망에 걸렸다.
경북 영천시에선 조합원 집을 찾아다니며 선거운동한 입후보 예정자의 배우자 E씨가 고발 당했다. 후보자 외에 선거운동을 해선 안 될 뿐 아니라, 후보자라고 해도 단순 출마 의사 표시를 넘어 직접적으로 지지를 호소하면 사전선거운동 금지 위반으로 간주된다.
이달 6일 기준 전국적으로 불법 선거운동 적발 건수는 고발 15건, 경고 31건 등 총 46건으로 집계됐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후보자 간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위법 행위가 급증하는 경향이 있어, 적발 건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2019년 제2회 선거에선 기부행위 273건, 비방ㆍ허위사실 공표 41건 등 적발 건수가 744건이나 됐고, 2015년 제1회 선거 때도 867건에 달했다.
이처럼 조합장선거가 돈 선거로 얼룩지는 가장 큰 이유는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전국 농협과 축협, 수협, 산림조합 수장은 풀뿌리 지역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다. 농협의 경우 전국 조합장들이 주무르는 금융자산(예금액ㆍ대출액 합계)만 700조 원이 넘는다. 수협은 68조 원, 산림조합은 10조 원 규모다.
조합장은 임기 4년간 직원 인사와 예산은 물론, 예금과 대출 같은 신용사업, 생산물 판매와 유통 등 각종 사업에서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 농어촌 지역에선 웬만한 국회의원이나 시장보다 힘이 세다는 평가도 나온다. 게다가 고액 연봉 및 수당도 챙길 수 있다. 조합장 평균 연봉은 1억1,0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당선만 되면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금품·향응을 제공하거나 경쟁 후보를 허위 비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억 원 쓰면 떨어지고 3억 원 쓰면 당선된다”는 뜻에서 ‘2락3당’이라는 표현이 회자될 정도다. 선거 분위기가 혼탁해지면서 신인 후보들조차 빨리 인지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불법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용희 전국농민회총연맹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선거운동 과정이 ‘깜깜이’ 상황이라, 일부 후보자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