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의 TSMC가 올해 경기 악화로 설비 투자 지출을 줄이기로 하면서 업계의 관심은 삼성전자로 쏠리고 있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이어 TSMC까지 투자 축소에 나서는 상황에서 메모리 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인위적 투자 축소나 감산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다시 한번 반도체 치킨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버튼을 누를지, 삼성전자 역시 감산 행렬에 동참하면서 반도체 수급에 균형을 찾을지 관심이 모인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31일 2022년 4분기 실적 발표 후 열리는 콘퍼런스콜에 올해 투자 전망에 대해 설명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투자 축소와 감산 계획을 내놓았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 대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으며, 미국 마이크론도 올해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20% 줄이고 설비 투자도 30% 이상 축소한다. 마이크론은 인력 구조조정에도 나섰다. 인텔도 감원 등을 통해 3년 동안 최대 100억 달러를 아낄 예정이다.
여기에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를 꺾고 반도체 매출 1위에 오른 TSMC까지 올해는 투자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TSMC는 12일 열린 실적설명회에서 올해 시설투자 목표액을 320억~360억 달러로 제시했다. 지난해 시설투자액(363억 달러) 대비 최대 11.8% 줄인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TSMC는 매년 수십억 달러씩 투자 계획을 늘려왔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스마트폰, 서버 등 정보기술(IT) 모든 분야에서 수요가 줄면서 TSMC 역시 올해는 투자 계획을 축소할 수밖에 없게 됐다. TSMC는 당장 이번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가량 줄어든 167억~175억 달러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TSMC의 분기 매출이 감소한 것은 2019년 이후 처음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들과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콘퍼런스콜에서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이 "인위적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 2000년 중후반에 있었던 반도체 치킨게임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반도체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공급량을 유지할 경우 가격은 꾸준히 내리고, 상대적으로 원가 경쟁력에서 뒤지는 경쟁사는 적자를 더 오래 감당해야 한다. 다시 반도체 업황이 반등할 경우 투자를 지속했던 삼성전자가 나머지 경쟁사의 시장 점유율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란 전략이다.
반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버티는 게 무리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4조3,000억 원)은 전년 동기 대비 69%나 줄었다. 2014년 3분기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5조 원을 밑돌았다. 문제는 올 상반기다. 대신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 영업이익 추정치를 1분기 695억 원 적자, 2분기 674억 원 적자로 예상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이 영업 적자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7,052억 원 적자)가 마지막이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공급 축소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반도체 원판(웨이퍼) 투입량 자체를 줄이는 인위적 감산이 아닌 메모리 반도체 라인 일부를 수요가 남아 있는 시스템 반도체 라인으로 개편하거나, 공정 고도화를 통해 달성되는 자연적 감산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올해 설비투자가 감소한다면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을 확장하겠다는 기존 전략은 다소 지연될 수 있겠지만 글로벌 수급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