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휴가도 육아휴직도 비정규직·중소기업엔 '남의 일'

입력
2023.01.15 17:15

정부가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해 다양한 제도 개편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근로자들에게 주어지는 유급휴가부터 제대로 보장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는 상대적으로 휴식권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지난달 7~14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급 연차휴가를 원할 때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69.9%였다.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휴가임에도 직장인 10명 중 3명이 연차휴가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고용 형태에 따라 응답률이 크게 달라졌다. 정규직은 81.3%가 자유롭게 연차휴가를 쓸 수 있다고 답했지만 비정규직은 이 비율이 52.8%에 불과했다. 성별에 따라서도 격차가 벌어졌는데, 특히 '정규직 남성(83.9%)'과 '비정규직 여성(44.4%)' 간 차이는 두 배에 달했다. 임금 수준에 따라 구분하면, 월 500만 원 이상 근로자(90.2%)와 월 150만 원 미만 근로자(44.4%)의 인식이 크게 벌어졌다.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도 고용 형태나 기업 규모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적이었다.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쓴다는 응답은 정규직(76.3%)과 비정규직(55.3%)의 차이가 컸으며, 공공기관에서 80.3%에 달한 긍정 응답률이 민간 5인 미만 회사에선 40.1%까지 떨어졌다. 육아휴직은 전체적인 긍정 응답률이 낮은 편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공공기관(82.1%)과 5인 미만 사업장(33.3%)의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남녀 간 인식 차이도 의외로 컸는데, 남성의 70.7%가 '(우리 회사는)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라고 인식하고 있는 데 반해 여성은 55.3%만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육아휴직에서도 남성(62.3%) 긍정 인식률이 여성(49.8%)보다 높았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같은 기업 내에서도 남성이거나 나이가 많거나 관리자 직급일수록 회사 내 분위기가 자유롭고 좋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반대로 여성이거나 나이가 어리고 연차가 낮은 직원일수록 눈치를 보며 자유롭게 휴가를 다 쓰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즉 기득권을 가진 관리자급은 현실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들은 기본권조차 제한적으로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과로를 부르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아니라, 자유로운 휴가 사용을 보장하는 일"이라며 "특히 대통령이 강조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유급 연차휴가를 부여하는 등 근로기준법을 하루빨리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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