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아 너의 마지막 43일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이태원에서 겨우 살아왔는데 또다른 고통을 겪다가 친구들에게 갔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사고 트라우마에 괴로워하다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태원 참사의 159번째 희생자 고(故) 이재현 군의 아버지는 마이크를 잡고 어렵게 입을 뗐다.
그는 "재현이가 죽기 전 일주일 동안 밝은 모습으로 밥도 잘 먹고 노래도 많이 부르고 게임도 재밌게 해서 이제 조금씩 예전으로 돌아오나 안심했어"라며 "근데 친구에게 갈 결심을 하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랬다는 걸 알고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며 연신 흐느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이태원 참사 세 번째 시민추모제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를 열었다. 추모제는 잠깐씩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이슬비 속에서 진행됐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우비를 입고 자리를 지켰다. 시민들의 손엔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이라고 적힌 피켓이 들려있었다.
이날 추모제에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 이른바 '윗선'을 건드리지 못하고 끝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미흡한 수사 결과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이종철 협의회 대표는 "74일 간의 특수본 수사는 우려처럼 윗선 수사를 하지 못했고, 셀프 수사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도 "특수본은 행안부, 서울시청, 경찰청 등 기관에 구체적인 주의 의무 위반이 없다고 판단해 꼬리 자르기식 결론을 내렸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더 큰 책임이 있는 주체들이 더 크게 처벌되는 것이 상식이 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맹이 없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한 국정조사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조 변호사는 "국정조사는 유가족들이 참사 당시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지만, 짧은 기간 급박하게 이뤄진데다 책임자들은 불성실한 자료 제출, 회피성 발언으로 공분만 일으켰다"며 "유가족의 능동적 참가를 보장하지 않은 국정조사는 유가족과 생존자 발언에서 드러난 의문점을 드러낼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유족들은 앞으로도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 촉구를 위한 추모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 대표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진상규명 활동을 본격 시작할 것"이라며 "단일 대응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고 국민여러분이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참사 발생 100일의 바로 전날인 다음달 4일 추모제를 열테니 100만 명의 시민이 모여달라 요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