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죽어 있을 거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체력훈련장에서 만난 이현중(23)의 표정은 오히려 밝았다. 30여 명의 취재진 앞에서 자신의 몸 상태가 100% 돌아왔다고 신고했다. 그는 지난해 6월 미국 프로농구(NBA)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 큰 부상을 당해 수술까지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참으로 우여곡절 많은 지난 한 해였다. 하승진 이후 한국의 'NBA 2호'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였다. 한국에서 6개월간 재활치료 및 훈련에 매진했다. 모든 준비는 마쳤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 비상할 일만 남았다.
이현중은 지난해 NBA 드래프트를 앞두고 큰 부상을 당했다. '워크아웃(NBA 구단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일종의 테스트 기간)' 도중 왼쪽 발등뼈와 인대를 다쳐 미국에서 수술까지 받았다. 그는 "발이 꺾이면서 발등이 눌리는 큰 부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NBA 드래프트 지명도 불발됐다. 아쉽게도 30개 구단 중 그를 원한 곳은 없었다. 악재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상실감도 컸지만 금방 다시 일어났다.
"처음에는 많이 좌절하고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 혼자 힘든 건 스스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과거에 머물러 있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위에선 '실패'라는 단어를 그에게 대입하기 시작했다. 이현중은 "실패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보완할 점을 찾게 됐다"며 "계속해서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고 싶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과연 한국 선수가 NBA에 진출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의 시선도 있다. 이현중은 "그런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내가 좋아서 하는 도전인데, 그런 말들이 오히려 나를 더 자극한다. 내가 꿈을 위해 도전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 같아 참 안쓰럽다"고 받아쳤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오히려 단단해졌다. 주변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혼자서 명상을 하거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정독하며 오롯이 농구에 집중했다고 한다. "좀비처럼 도전할 겁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고, 쓰러지면 또 좀비처럼 일어나야죠."
이현중은 이번 주 LA로 날아가 NBA 진출에 재도전한다. 수술을 집도했던 현지 의사를 만나 몸 상태를 확인하면 그 결과를 NBA 구단들과 공유한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루카 돈치치(23·댈러스)의 에이전트와 계약해 NBA 하부리그인 G리그에서 워크아웃을 진행했다.
그는 이날 'NBA 구단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그것에 대해선 노코멘트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말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는 "다행히 관심 있는 G리그 팀들이 있다고 해서 시작은 G리그에서 하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201㎝의 큰 키에도 슈팅 능력을 갖춘 그는 NBA 무대에서 통할 선수로 평가받는다. 데이비슨대에서 3학년까지 3시즌을 뛰면서 슈터로서 좋은 인상을 남겼다.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에 따르면 이현중은 2020~21시즌 2학년 때 야투율 50.8%, 3점슛 성공률 44.2%, 자유투 성공률 90.0%를 기록, '180 클럽'을 달성하는 엄청난 성과를 냈다. 180클럽은 보통 필드 골 성공률 50% 이상, 3점슛 성공률 40% 이상, 자유투 성공률 90% 이상일 때 가능하다.
이현중도 슈팅 실력만큼은 NBA에서 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슈팅에서 확실히 경쟁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워크아웃 때 트레이너가 '드래프트 클래스에서 네가 가장 좋은 슈터다. 그걸 잊지 말라'고 했다. 나도 그걸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슈팅은 '경쟁력이 있다'가 아니라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수비 등에 피지컬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지적받기도 한다. 그는 "벌크업을 하는 동시에 스피드도 잃지 않으려고 훈련을 병행했다"며 공격의 다양성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3학년 당시 90, 91㎏이었던 체중을 현재 98, 99㎏으로 키웠다는 그는 "몸이 무겁지 않고, 스피드가 오히려 더 빨라진 느낌이다. 살을 잘 찌웠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NBA에 진출하면 팀 플레이를 위해 꼭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단다.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 "투박하지만 팀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리더 강백호가 기억에 남더라고요. 저 역시 팀 플레이 위주의 구단에 들어가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