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규 휴대폰 버린 배우자에 벌금형보다 센 집행유예 선고 이유는

입력
2023.01.12 15:45
벌금 200만원 구형인데... 이례적 높은 선고
법원 "사실혼 배우자, 고의로 휴대폰 인멸"
"실체적 진실 규명에 지장 초래" 질타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휴대폰을 버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실혼 배우자가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주진암 부장판사는 12일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회봉사활동 80시간도 명령했다.

A씨는 2021년 9월 29일 검찰이 유 전 본부장 주거지를 압수수색하기 전에 그의 지시를 받아 휴대폰을 부수고 종량제 봉투에 버린 혐의로 기소됐다. 폐기된 휴대폰에는 유 전 본부장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 등 '대장동 일당'과 나눈 대화기록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검찰은 결국 휴대폰을 찾지 못했다.

A씨 측은 처음에는 "유 전 본부장의 이별 통보에 우발적으로 휴대폰을 폐기했다"고 주장했지만, 유 전 본부장이 지난해 11월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인정하는 진술서를 검찰에 제출하자 A씨도 돌연 입장을 바꿨다. A씨는 "(유 전 본부장에게) 휴대폰을 포함한 짐을 버려달라는 말을 들었고, 휴대폰을 버리면 나중에 형사사건화됐을 때 문제가 될 것이란 미필적 인식은 있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수사 초기와 달리 유 전 본부장이 사후적으로 범행을 인정하는 점을 고려했다"며 A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구형했다. 법원은 그러나 구형을 한참 뛰어넘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A씨가 미필적 인식을 넘어서 고의적으로 휴대폰을 버린 게 맞다고 본 것이다.

주진암 부장판사는 "유 전 본부장은 휴대폰이 검찰에 압수되지 않도록 A씨에게 지시해서 폐기하도록 했고, 체포 및 구속된 뒤에도 혼선을 주려고 휴대폰 위치를 말하지 않았다"며 "A씨는 유 전 본부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한 상태에서 그의 지시에 따라 휴대폰을 인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주 부장판사는 A씨와 유 전 본부장이 휴대폰 인멸 전후 사정에 대해 명확하게 진술하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주 부장판사는 "A씨는 중요 증거자료가 저장됐을 것으로 보이는 휴대폰을 인멸해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형사사법권 행사에 큰 지장을 초래한 만큼 형사적 제재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유 전 본부장이 일부 정보를 수사기관이 확보하도록 협조하고 있는 사실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