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푹푹 찌는 한여름에 서울대에서 한 건물 청소를 마치고 돌아온 노동자가 창문과 에어컨 하나 없는 3.3㎡(1평) 남짓한 휴게실에 몸을 뉘였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2년 뒤인 2021년 6월엔 더운 날씨 속 건물 한 동을 혼자 청소하던 또 다른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사회적 비난 여론이 확산하자 국회는 부랴부랴 관련 법안을 개정했고, 지난해 8월부터는 모든 사업장에 일정한 시설을 갖춘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 대학 10곳엔 아예 휴게실이 없고, 나머지 대학의 절반 정도는 휴게실 상태가 기준 위반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9월부터 약 한 달간 전국 대학교 185곳과 아파트 94곳을 조사한 결과, 전체 279개 사업장의 44.4%에 해당하는 124개소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휴게시설 설치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12일 밝혔다.
아예 휴게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곳은 12곳에 달했다. 특히 대학교 185곳 중 10곳에는 아예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지 않았다. 한 대학교에는 협력업체 급식시설 노동자 5명의 휴게실이 아예 없었고, 경비·시설관리·급식 근로자 11명의 휴게실이 없는 대학교도 있었다. 개정 산안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협력업체 직원이더라도, 대학교는 휴게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휴게실이 있지만 설치·관리 기준에 맞지 않는 곳도 많았다. 조사 대상이 된 대학교 중 84곳(45.4%)에서 법 위반사항 175건이 적발됐는데 △계단 밑에 휴게실이 설치돼 천장 높이 기준(2.1m)에 미달되거나(25건) △냉·난방 설비 미설치(25건) △환기 시설 미비(24건) 등이 대표적이었다. 마실 수 있는 물이 없는 곳도 22곳이나 됐고, 휴게실에 청소용품 등이 적재돼 있어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인 곳도 19곳이었다.
책임 소재가 확실한 대학교는 시정 조치를 내릴 수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파트의 경우 시설 소유주가 입주민(입주자대표회의)이어서, 이들의 동의나 협조 없이는 휴게실 설치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입주민에게 청소·경비 노동자를 위한 휴게실이 설치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하는 협조 서한을 발송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124개 사업장에서 확인한 273건의 위반사항의 시정을 요구해 대부분 시정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김철희 고용부 산업안전보건정책관은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 제도가 도입 초기임을 고려하더라도 법 위반 사업장 비율이 높았다"며 "향후 재정적으로 휴게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사업장에 대해서는 재정지원을 병행해 제도의 현장 안착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