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으르렁거리고 역사적 라이벌인 이유는 너무나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이란다. 슬프지만 가장 가까운 자가 가장 큰 원수가 되기 일쑤다. 성경도 그 고충을 이렇게 표현한다. "노엽게 한 친척과 가까워지기는 견고한 성을 함락시키는 것보다 어려우니, 그 다툼은 마치 꺾이지 않는 성문의 빗장과 같다."(잠언 18:19) 그러니 남북한이 이토록 오랫동안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고,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이 우리의 역사적 라이벌이기도 하다.
성서의 지혜를 전하는 잠언을 보면 이런 분쟁의 제일 원인은 '말'이다. 서로 주먹질할 필요도 없다. 특히 호사가들의 말은 격한 오해만 증폭시키니, 남 이간질하는 것에는 피 한 방울도 흘릴 필요가 없다.
생각보다 혀의 힘은 무섭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무기를 들지 않고도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할 수 있다."(18:21) SNS의 댓글은 이미 여러 유명인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저널리스트의 펜 끝은 국민을 반으로 가르고 시청 앞으로 몰아가 서로 멱살잡이를 하게 만든다.
이 세상에 객관적인 것은 없다. 사건을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으며 그럴 권리도 없다. 사건의 당사자는 당연히 자기의 주관적 입장을 대변한다. 제삼자들이 끼어들어 객관적으로 말하겠다고 하지만 명백한 거짓말이다. 관찰자의 해석도 그들의 주관과 이해관계를 벗어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쟁과 다툼이 한번 일어나면 멀어진 사람들 사이가 봉합되기가 어렵다. 가족도 절친도 예외가 아니다.
말은 파장을 일으킬 힘이 있지만 그 결과가 꼭 부정적이지는 않다. "슬기로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깊은 물과 같고"(18:4)라고 한다. 결국 누군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말을 전한다면 다툼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안 착하기로 작정하는 것은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마찬가진가 보다. "헐뜯기를 잘하는 사람의 말은 맛있는 음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간다"(18:8)고 하니 말이다. 뒷담화는 밤을 새도 재밌으니 중간에서 말 전하는 사람은 신날 수밖에 없다. 양측에 가서 그저 상대를 헐뜯어 주기만 하면 너무나 맛있어 하기 때문이다. 이 무슨 미련한 일인지.
잠언은 파국을 피할 수 있는 조언을 이렇게 전한다. "다 들어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것은, 수모를 받기에 알맞은 어리석은 짓이다."(18:13) 다 듣지 않는 이유는 이미 마음에 답을 정해 놓았거나 그냥 미워하기로 작정했거나 분을 참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전해 듣는 말은 반만 믿는 것이 상책이다. 특히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경우 다음의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송사에서는 먼저 말하는 사람이 옳은 것 같으나, 상대방이 와 보아야 사실이 밝혀진다."(18:17)
누구든 자신의 해석과 주장을 말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말만이 객관성을 보장한다고 말한다면 과대망상증에 가까운 일이다. 더 나아가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입을 놀리는 자는, 자신이 당할 매서운 결과를 각오해야 한다. "미련한 사람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불러들인다."(18:6)
잠언은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자를 '말쟁이'로 특정한다. 분쟁 가운데 다툼이 난무하다면, 먼저 말쟁이의 혀가 제어되어야 한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26:20) 누군가가 자신에 대하여 전한 말을 듣고 열 받았다면, 다음 구절도 상기해 보라.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