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철강사들은 2020년을 기점으로 극저온 후판 시장 주도권을 일본으로부터 빼앗아 왔다. 액화천연가스(LNG) 저장·운송에 필수인 이 기술 개발에 길게는 10년을 쏟아부은 결과물이다. 이처럼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꼽히는 LNG추진컨테이너선(LNG추진선)이나 LNG운송선을 만들 때 주로 쓰이는 특수 후판 제조 기술의 국산화는 물자 이동 비용 및 시간 절감, 탄력성 높은 발주 시스템으로 이어지면서 국내 조선사 경쟁력 상승 요인이 됐다는 평가다.
국내 조선사 실적 개선을 이끌고 있는 친환경·고부가가치선박 수주 '골 퍼레이드' 뒤에는 국내 철강사들의 후판 개발 '어시스트'가 있었다. 1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은 2020년 이후 고부가가치 선박에 쓰이는 소재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K조선' 수주 행렬 훈풍에 돛을 달았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가스 운반선과 컨테이너선, 유조선에서 중국과 일본 등에 비교 우위를 보였는데, 여기에 쓰인 후판 국산화가 조선업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현대제철은 재작년부터 LNG추진선의 연료탱크 소재로 쓰이는 후판 제품 '9% 니켈(Ni)강'에 대한 양산 체제를 구축, 조선사들에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9% 니켈강은 영하 196도의 극저온 환경에서도 충격에 대한 내성이 뛰어나고, 용접 성능도 좋아 LNG저장시설 소재로 널리 사용되는 강종이다. 한국조선해양은 2021년부터 9% 니켈강을 LNG추진선 건조 등에 적극 활용했고, 친환경 연료 사용 추세와 맞물려 수주 경쟁에서 빛을 볼 수 있었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포스코도 지난해 LNG연료탱크에 고망간강 기술을 적용하면서, 미래 친환경 선박 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포스코에 따르면 고망간강은 포스코가 2013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신소재로, 선박에 적용하기 위해 대우조선해양과 전처리부터 용접까지 세부적인 기술을 10년 가까이 연구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고망간강은 철에 다량의 망간을 첨가해 고강도, 내마모성, 극저온인성 등 다양한 성능을 특화시킨 점이 특징으로, 기존 소재보다 가격이 낮으면서도 극저온에서 잘 견뎌 LNG연료탱크 차세대 소재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국내 철강사들의 LNG 저장·운송용 강재 기술 국산화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수소 저장·운송용 강재 개발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액화수소를 저장·운송하기 위해서는 강재가 LNG보다 더 낮은 영하 253도 이하의 환경을 견뎌야 한다"며 "영하 163도까지 견디는 LNG 저장·운송용 강재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향후 우리 철강사들이 액화수소 저장·운송 기술 개발에 더 유리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