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정부가 부담하는 의료비 비율을 높이는 ‘문재인 케어’를 “혈세를 낭비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폐기를 선언했다. 전임 정부 5년 동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과잉 진료로 폐해만 쌓이게 됐다는 이유다. ‘3대 개혁’(노동ㆍ교육ㆍ연금)에 건보 개혁을 추가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최근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건 2024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겨냥한 포석이라는 게 여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20%대로 떨어졌던 지지율이 40%선을 돌파할 수 있었던 건 개혁 이슈를 선점한 효과 덕분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화물연대본부 파업에 대해 ‘법치’를 앞세우며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며 파업 철회를 관철시킨 게 분기점”, ”여세를 몰아 ‘노동 개혁’ 드라이브를 건 게 주효”라고 평가한다.
여권에선 “윤 대통령의 정무적 ‘포텐’(잠재력)이 터진 것 같다”며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하지만 개혁을 환영하는 여권에서도 문재인 케어 폐기만큼은 기대보다는 걱정을 앞세운다. “국민은 줬다 뺏는 걸 가장 싫어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의원은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한 가정 전체가 풍비박산 났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지 않느냐”며 “약자 복지 성격이 큰 보장성 강화 기조를 거꾸로 되돌린다는 건 증세 정책만큼이나 민심의 저항이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명분도 궁색하다. 지난해 외래 의료 이용 횟수가 365회를 넘는 사람이 2,550명으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건데, 이들이 ‘낭비’했다는 재정은 251억 원으로 지난해 건보에서 지출된 의료비(86조9,545억 원)의 0.028%다. 최우선적으로 줄이겠다고 한 자기공명영상(MRI)ㆍ초음파 검사비는 2021년 기준 1조9,066억 원으로 전체 급여의 2.2%다. MRI 검사를 늘려 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이 병이 깊어진 후에 뒤늦게 치료하는 데 쓰는 돈보다 많지 않을 테다.
여당 내에선 “대통령실이 경제관료에게 너무 휘둘린다”고 우려한다. 한 관계자는 “법인세 인하도 향후 세수가 펑크 날 수 있다며 당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지만, 기획재정부 등 경제라인에서 강하게 밀어붙였다”며 “유류세 인하에 더해 가격 하락과 거래 절벽으로 부동산 관련 세수도 크게 줄 거 같으니 복지 관련 지출부터 줄이려는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건보 개혁을 주도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교롭게도 기재부 출신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 당시 감기 등 가벼운 질병 치료비 부담을 크게 줄인다고 했을 때 일반 국민들조차 ‘문턱이 닳도록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이 생길 것’이라고 반대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시행 이후 한 번이라도 병원을 찾은 사람은 크게 만족했다”고 회상했다.
국민들은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경제적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공포를 늘 안고 산다. 민간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만 4,000만 명이다. 문재인 케어는 박근혜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을 계승했다. 문재인 케어면 어떻고 윤석열 케어면 어떤가. 보수ㆍ진보를 떠나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줄이려는 개혁은, 진정한 개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