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에 사는 20대 서모씨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간 건 약 4개월 전부터다. 인생에서 기댈 피붙이가 한 명도 없다는 쓸쓸함에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서씨가 부모와 함께 산 건 갓난아기 때 1년이 전부다. 집안 사정으로 조부모에 맡겨진 그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척 집이 있는 경상도로 이사해야 했다. 조부모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다른 친척의 돌봄을 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조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직후 친척 집도 떠나게 됐다. 집 내부 수리가 필요해 두 달만 방을 비워달라는 어른들의 말에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시작했는데, 문득 '내 주위엔 아무도 없구나'란 절망감이 찾아왔다. 이때 다리도 크게 다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스스로 '고립'하게 됐다.
또 다른 30대 청년 노모(서울 강서구)씨는 입시 실패 이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자존감이 무너져 누군가를 마주하는 게 겁이 났다. 이후 거듭된 취업 실패는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외로움이 컸던 탓에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도 찾아봤지만, 막상 만남의 시간이 다가오면 두려움이 커져 나가는 걸 포기하곤 했다. 노씨는 "사람들을 만나 다시 활력을 얻고 싶지만, 어느 순간 그게 너무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30대 직장인 이모씨도 이들과 비슷한 일상을 보낸다. 직장생활 외에는 오로지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누워 있는 게 이씨 일상의 전부다. 집은 쓰레기장으로 변해갔고, 이씨는 그런 집을 보면 더 무기력해졌다. 최근에는 2시간마다 깰 정도로 푹 잤던 날이 언제인지 잊어버렸다.
11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이들처럼 세상과 담을 쌓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고립청년'은 약 30만~4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일본의 '히키코모리'에서 따와 한때 '은둔형 외톨이'로 불리기도 했다.
한국일보는 청년 문화예술 활동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오늘은'과 함께 고립청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은'은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GS25와 함께 고립청년 100명에게 '청년응원 키트'를 전달했다.
키트에는 고립청년이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 규칙적인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물건들을 담았다.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아로마 스프레이와 수면 안대, 응원 문구가 담긴 수건, 아침에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텀블러를 넣었다. 고립청년 대부분이 수면과 일상생활이 매우 불규칙한 점을 고려한 것이다.
고립청년들은 '누군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정서적 연대를 갈망했다. 친척집을 떠나 혼자 지내는 서씨는 키트를 신청하며 "목적 없는 맹목적인 응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키트에는 응원 메시지가 담겼다. GS25가 '고립청년 응원 이벤트'를 통해 받은 시민들의 메시지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이지만, 고립청년들은 이들의 응원에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청년들은 "어떠한 목적도, 이유도 없는 순수한 위로에 웃음 짓게 됐다", "포장지의 응원 문구를 보고 눈물이 나 따로 보관했다", "연말이라 더 쓸쓸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신경 써 준다는 느낌이 들어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당초 키트는 50명의 청년에게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200명 넘게 신청이 몰려 전달 인원도 100명으로 늘렸다. '오늘은'의 심다솜 책임매니저는 "키트를 받고 싶어 하는 청년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는 청년이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자신처럼 고립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이 있다는 동질감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됐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20대 지모씨는 잦은 취업 실패에 낙오자가 됐다는 생각에 빠지면서 고립의 길로 가게 됐다. 아침, 점심, 저녁의 경계가 무너진 지 3개월이 넘어가면서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러나 지씨는 키트로 작은 희망을 얻게 됐다. 그는 "나와 비슷한 고립청년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다"며 "답장은 할 수 없겠지만 그들에게도 응원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청년 노씨도 "우리를 응원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보통 고립 생활을 한 지 3개월이 넘어가면 '장기 고립'에 빠지기 쉽다. 장기 고립은 고위험군으로 이어지는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립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들의 회복을 돕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규칙적인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한 이유다. 심 책임매니저는 "고립청년들은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지켜보며 응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