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이 좋을까, 변치 않는 것이 좋을까? 멈춰 있는 것과 움직이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나은 길일까? … 바보 같아. 변할 수 없는 것도 있잖아. 혹은 멈추고 싶은데 움직여지는 것과 움직이고 싶은데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있잖아. 애초에 질문을 던지려면 먼저 주제나 목적어를 찾을 필요가 있어."
'물고기를 잡으려다 강에 빠진 것과 물을 마시려다 강에 빠진 것 중 어떤 것이 더 멍청할까?'라는 '고양이는 안는 것' 책 초반에 나온 대사를 읽고 뜬금없이 내 상황을 떠올렸다. 어떠한 결과에 다다랐을 때, 그 결과를 초래한 원인에는 얼마큼의 중요도가 있는 것일까. 결과가 예상에서 벗어난다면 그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별거 아닌 문장에 이토록 많은 잡념을 쏟아 넣은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물에는 없지만 물고기에게는 있는 것이 뇌라면 책에는 없지만 독자에게는 있는 것은 생각이리라.
책방의 문을 열 때 자금이 부족해서 작업실을 꾸몄던 장식품들을 가져왔다. 덕분에 책방의 구석구석은 고양이 장식품들로 채워졌다. 고양이와 오래도록 살고 주변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받았던 선물들이 대부분 고양이와 관련된 것이라는 이유였다. 어딜 가든 고양이와 관련된 것을 참지 못하고 사야 하는 충동구매도 한몫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책방 일부는 '고양이'라는 테마로 꾸려보자고 마음먹고, 고양이가 주인공인 책, 고양이 집사들이 읽으면 좋을 책들로 한쪽 책장을 채웠다. 덕분에 고양이에 관한 나름의 좋은 책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중에는 고양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도 있었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책도 있었다. 한 예로 '검은 고양이 카페'라는 책은 영화화한다면 당장 보러 갈 거라고 마음먹었다.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밤만 되면 멋진 남자로 변신하는 스토리다. 읽으면서도 설렜다. 소녀 시대의 감성이 이런 것일까…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책은 이미 영화로 나왔지만, 그 영화는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책 '고양이는 안는 것'이다. 2019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한국에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다렸는데 2023년이 된 지금까지도 개봉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 아쉬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변하는 책방 서가에서 유독 변치 않고 머무는 책이 되었다. 책방 서가의 책들은 하나의 책이 판매가 되면 새로운 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때로는 하나의 책을 들여놓기 위해 기존의 책 중에서 하나를 뺀다. 그러나 이 책은 인기가 높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미끼 상품도 아닌데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책방 서가를 차지한다. 재고가 떨어지면 안 팔릴 것을 알면서도 재입고하는 묘상한 책이다.
고양이들의 세상은 인간의 세상과는 다르다. 서로 얽히고 설켜 관계를 맺고 살지만 평행선을 그리며 각자의 방식대로 나아간다. 이 책에는 그런 관계가 담겨 있다. 공존 속에 소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말하는 고양이의 세상과 고양이가 바라보는 인간의 세상을 엿보다가 사람의 시선으로 문득 옮겨가 사람의 시선에서 고양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절대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 고양이들이 어떠한 접점을 통해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접점이 때로는 불협화음이다. 소설을 읽으면 그때마다 내 상황들을 대입했다. 내가 무심코 베푼 친절이 누군가에게 화마가 된다면… 누군가를 지키려는 마음이 누군가의 꿈을 파괴하는 일이라면….
책에는 여러 주인공이 나온다. 딱 한 사람과의 관계만 맺었기에 사람이라고 믿었던 고양이 요시오,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긴 하지만 버림받은 트라우마가 있는 사오리, 자신의 약점을 숨긴 채 살아가다가 결국 자신만의 색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고흐, 사랑보다 안정적인 삶을 꿈꾸지만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고양이 키이로, 위험할 것을 경고받지만 이름을 가지고 싶어 용기를 내는 삼색이 남자 고양이. 모두 다 겉으론 평범해 보여도 저마다 약점을 가지고 산다. 모두 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것 같아도 결국엔 그 꿈을 향해 나아간다.
고양이들이 늦은 밤 네코스테 다리에 모여 집회를 여는 것처럼, 언젠가 이 책으로 늦은 밤 사람들과 집회(?)를 열고 싶다. 고양이들처럼 주제로 결론 없는 긴 대화를 하는 쓸데없는 토론일지라도 그저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모임을 말이다. 책방에서는 크고 작은 모임을 통해 글도 쓰고 대화도 하고 취향도 나누는데, 이 책을 서가에서 빼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언젠가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관점에 따라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내가 다를 수 있는 것처럼 독자의 시선에 따라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책방이 사람들의 네코스테 다리가 되어 이 책의 주인공에게 대입한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는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