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용접공'의 고착화

입력
2023.01.10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장기간 이어져온 불황을 딛고 요즘 한국 조선업계는 호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조선산업은 지난해 전 세계 발주량의 37%를 수주했다.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 ‘빅3’ 모두 2년 연속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발주의 내용도 좋다.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점유율이 58%,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로 발주 비중이 늘어난 친환경 선박의 점유율이 50%에 달한다.

□ 문제는 일감이 쌓이는데 배를 만들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3, 4년치 일감이 확보됐지만, 올 연말까지 용접공 도장공 등 생산인력이 1만4,000여 명 부족할 거라고 한다. 업계 호황이던 2014년 20만 명이 넘던 조선업 종사자는 작년 10월 9만5,000명 수준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불황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 데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 탓에 인력들이 대거 이탈한 탓이다. 숙련공이 많이 필요한 업계 특성상 단시간 내 많은 인원 충원은 쉽지 않다.

□ 정부가 최근 내놓은 대책은 조선업에 외국인 인력을 신속히 수혈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업별 외국인력 도입 허용 비율을 20%에서 30%로 한시적으로 늘리고, 조선업 비자 발급 소요기간을 5주에서 10일 이내로 단축시키는 것 등이 골자다. 국내 행정절차가 너무 더뎌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업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 단기적으로 인력난 숨통이 트일 수는 있겠지만, 근본 해법이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장기 파업은 조선업계 숙련 용접공들의 열악한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수십 미터 높이의 선박에 매달려 위험하고 고된 노동을 한 대가가 실수령액 200만 원을 간신히 넘는 급여명세서였다. 이젠 업계가 움직일 차례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9일 조선업 인력 현안 간담회에서 “작업 환경과 임금구조 개선에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렇잖으면 값싼 외국인 인력으로 ‘월급 200만 원짜리 용접공’만 고착시킬 뿐이다. 품질 저하로 조선업 강국의 지위가 흔들릴 것임은 물론이다.

이영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