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심심한 사과' 곡해 소동으로 불거졌던 문해력 논란이 출판가의 화두로 떠올랐다.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심심(甚深)'을 젊은 누리꾼들이 '지루하고 재미없다'의 동음이의어로 오인하면서 세대갈등까지 벌어진 사회 현상을 두고 출판계가 지나칠 수 없는 법. 읽고 이해하는 게 출판의 본업인 만큼 문해력 관련 도서가 줄을 잇고 있다.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이 이렇게 한자를 몰라서야!"라며 혀를 차겠지만, 출판계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한자 이해가 아니라 읽고 사고하는 능력 그 자체다. 과거에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교재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정확하고 깊이 있게, 비판적으로 읽고 사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성인 문해력으로 주제를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단문 위주의 SNS 글, 영상 매체와 스마트폰을 지나치게 가까이 하면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건 전 세대적 현상.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훨씬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니 나이 타령할 게 아니다.
문해력 바람은 출간 도서 숫자로도 입증된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22년 '문해력'을 키워드(부제 포함)로 한 도서는 195권이나 됐다. 2011년 출간된 문해력 도서가 1권뿐인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올해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관련 도서가 15종 출간됐다.
이 중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어크로스)'는 디지털 시대, 종이와 스크린을 넘나드는 새로운 읽기 전략을 고민하는 책이다. 1월 1주 기준 교보문고 인문분야 베스트셀러 15위에 올랐다. 언어학자인 저자 나오미 배런에 따르면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 문해력은 다양한 정보통신 기기를 활용해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심지어 오디오북을 '귀로 읽는' 시대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잘' 읽을 수 있을까. 꼭 종이책만 읽을 필요는 없다. 매체보다 더 중요한 건 독서에 임하는 자기의식과 마음가짐이라고 저자는 설파한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이비에스북스의 '읽었다는 착각(조병영 등)'은 어른들을 위한 일종의 문해력 워크북이다. 책의 곳곳에 삽입된 문해력 연습 문제를 풀다 보면, 그간 얼마나 활자를 피상적으로 읽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는지 깨닫게 된다.
기실 문해력은 성인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역량이다. 주택임대차계약서나 근로계약서를 쓰거나 각종 법률 문서를 읽는 것 모두 문해력의 영역이다. 업무 메일이나 보고서를 일의 맥락에 맞게 취급하는 능력도 마찬가지. 문해력 수준이 연봉과 비례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동일한 학력이라도 문해 수준에 따라 직장인들의 임금 차이가 많게는 2~2.5배 벌어졌다고 한다.
이밖에 난독으로 인해 글을 읽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을 '후천성 독서 장애 문제'라 명명하며 인지뇌과학적 방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난독의 시대(다산스마트에듀)', 책 육아 전문가의 문해력 교육법을 담은 '문해력 강한 아이의 비밀(허들링북스)'도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문해력 관련 도서 중 상당수는 여전히 초등학생 대상 교재이지만, 최근 들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일반 대중서가 다수 출간되고 있다"며 "특히 어린이의 학습을 돕는 부모를 위한 문해력 책이 나오는 것도 새로운 경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