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조의 회계 투명성 강화, 노동 현장 불법 근절, 파견제 등 민감한 노동개혁 안건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해 풀기로 했다. 경사노위에서 자문단과 연구회 등을 구성해 구체적 이행 방안을 만들고 입법까지 시도할 계획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부가 원하는 개혁을 위해 사회적 합의 기구인 경사노위를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3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 따르면 정부와 경사노위는 이달 중 경사노위 내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자문단'과 '연구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각 자문단과 연구회는 경사노위 내부 절차를 거쳐 구성되며, 각각 5, 6월에 전문가안과 정부안을 마련·발표한 뒤 이를 8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 설명을 종합하면 자문단은 '노사관계 제도·관행' 중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그 예시로 △회계투명성 강화 △노사 현장 불법 근절 △노사 대등성 확보 등을 들었다.
연구회는 노동규범과 이중구조 개선 방안을 맡는다. 구체적으로는 △근로자대표 및 부분근로자대표 도입 △파견·도급기준 법제화 및 파견 대상 확대 등 파견제도 개선 △노조설립·단체교섭 개편 방안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단계적 적용 방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대부분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정부가 경사노위의 자체 위원회 구성 대신 자문단·연구회 형식을 들고나온 것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에서다. 경사노위에 의제별 위원회 같은 정식 위원회를 구성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논의 진척도 쉽지 않기 때문에 신속하게 논의에 착수할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논의의 폭이나 의제, 형식 등도 바뀔 수 있으며, 노사 당사자도 언제든 협의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즉각 비판을 쏟아냈다. 자문단이나 연구회의 의견을 경사노위의 의견으로 삼고 정책까지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 노동개혁 방안을 연구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도 연구 시작 전 공개된 정부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권고안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경사노위의 주체는 노사정이고, 자문단은 경사노위를 대표할 수 없다"며 "자문단 의견을 경사노위 의견으로 둔갑시킨다면 한국노총이 들러리 설 이유가 없다"며 경사노위 불참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정식 위원회 발족 등 절차를 밟는다 하더라도, '답은 정해져 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의제별 위원회를 구성한다 해도 노사 간 갈등이 빚어질 것이고, 결국 중간에 선 공익위원안을 정부안으로 삼아 밀어붙일 것"이라며 "노동계의 저항이 예상되는 의제들을 추진해 나가기 위한 '면피성 통로'를 찾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경사노위는 노사정이 대화를 통해 타협을 이뤄내는 목적으로 설립됐는데, 거수기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