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때 묵혀둔 간첩 수사 봇물... 동시다발 공안몰이 논란

입력
2023.01.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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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경남·전북에서 국보법 수사 
진보당 전현직 간부 2명 연루 의혹 
"文 정부에서 못 한 수사 이제 하는 것" 
"공안정국 조성용 억지 수사" 엇갈려

방첩당국이 전국 동시다발로 '간첩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발생한 지 5~10년이 지난 사건들이다. 국가정보원 개혁과 남북대화 분위기에 치중한 문재인 정부에서 위축된 대공수사에 다시 불을 지폈다. 내년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겨야 하는 국정원이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공안몰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시민단체와 정부소식통에 따르면 방첩당국은 제주·경남·전북에서 활동하는 진보 인사들이 간첩단을 조직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를 포착하고 지난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여왔다.

특히 제주에서는 진보당의 전·현직 지역 간부 2명이 반국가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은 전직 도당위원장인 A씨가 2017년 7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조선노동당 대남 공작부서인 문화교류국 공작원과 접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A씨는 진보당 현직 간부인 B씨와 제주 지역 농민운동가 C씨를 포섭해 지하 조직인 'ㅎㄱㅎ'('한길회'의 자음 표기로 추정)를 만들고 반정부 투쟁, 한미군사 훈련중단 등 북한 지령을 이행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남 창원에서는 경남진보연합 회원 등에 국보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민중자주통일전위'라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들이 북한으로부터 '친일적폐청산운동을 총파업과 결합시켜 보수 세력에 타격을 입히라'는 등의 지령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전북에서도 지역 시민단체 대표 D씨가 국보법 위반 혐의로 최근 전주지검에 송치됐다. 하지만 해당 사건들에 연루된 피의자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 대공 수사 의지와 역량이 강화된 결과로 해석한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지낸 민경우 대안연대 상임대표는 “1990년대까지는 간첩단이 지하당(불법적으로 숨어 활동하는 정당) 형태로 운영됐는데 2000년대 들어서는 북한이 친북 인사를 해외로 불러 ‘이런 일들을 챙겨봐달라’는 식으로 가볍게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포섭된 인물이 꽤 많을 것으로 보는데 지난 정부 때는 수사 의지가 적어 적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첩당국이 수사의 판을 키울수록 국보법 위반 혐의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미다.

"경찰에 신고한 집회도 친북활동으로 매도"

다만 '의도가 담긴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수사 선상에 오른 진보당 간부 B씨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경찰에 집회신고를 내고 제주공항 등에서 공개적으로 한 통일운동마저 친북활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면서 "정부가 위기상황을 돌파하려고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D씨의 경우 2013~2017년 통일운동을 하다가 알게 된 사업가와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국정원과 경찰은 상대방을 북측 인사로 보고 있지만 D씨는 이 사업가를 중국인이라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내년 경찰로 넘어간다. 이에 국정원이 수사 역량을 증명하려고 무리하게 속도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맡고 있는 사건을 경찰에 이양하기에 앞서 마무리하기 위해 수사에 속도를 높이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근 기자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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