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입니다. 지난해 저의 뜻대로 대학 입학 원서를 넣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반수를 결심한 저에게 어머니는 "작년에는 네 뜻대로 해서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무조건 내가 쓰라는 곳만 쓰라"고 하십니다. 제가 가고 싶은 대학에 지원하겠다고 하니 어머니는 "네 멋대로 해서 인생 망친 뒤에 다른 소리 하지 마라"며 윽박지르셨어요.
아버지는 제 생활에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세요. 대학 입시는 물론이고 어린 시절부터 교육은 어머니께 맡겨두고 신경을 쓰지 않으세요. 가족여행 외에는 같이 시간을 보냈던 적이 많지 않아요. 말로는 "옆에 있을 테니 고민이 있으면 언제나 상담하라"고 하시지만 제가 하는 소리가 괜히 아버지에게 짐이 될까 싶어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첫째인 저에게 기대가 커요. 저더러 자신의 '희망'이라고 하셨어요. 늘 의지할 대상이 되어달라고 하셨어요. 반면 동생은 어머니의 관심 밖입니다. 성격이 사납고 난폭해서 어머니와 충돌이 많았어요. 사소한 일로도 주먹을 내지르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교 수업시간에도 소리를 지르거나 등교를 거부하는 등 돌발 행동을 했어요. 지금도 어머니와 감정적인 충돌이 잦습니다.
아버지와 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어머니는 저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십니다. 아버지와 다투고 난 뒤 당시 7세이던 저를 끌어안고 "넌 나의 분신이야"라고 울면서 말씀하셨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네가 형인데 참아야지", "장남이니까 이해해야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면서 저의 모든 생활을 통제하려고 해요. 그러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면 거침없이 분노를 표현하십니다.
어머니께서 화를 낼 때마다 저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습니다. 공부를 곧잘 했던 저는 고등학교에 와서 성적이 떨어졌고, 큰 불안감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고2 시절 기말고사가 끝나기 하루 전, 남은 과목을 공부하던 중 평소보다 떨어진 성적을 받을 것이고 이로써 내 인생도 끝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죠. 그러다 가족과 친구, 제 자신에게 남기는 유서를 각각 써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습니다.
다음날 친구에게 유서를 남기고 산으로 갔는데 아버지가 황급히 저를 찾아 결국 미수로 그치게 됐습니다. 그날 저녁 부모님은 크게 다투셨어요. 아버지는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저 지경이 됐냐"고 어머니를 몰아세웠고, 어머니는 가출을 하셨어요. "엄마의 희망인 네가 죽으면 엄마도 죽어야 한다"며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를 향해 저는 "힘든 건 나인데 왜 자꾸 짐을 지우느냐"고 소리 지르며 처음으로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저를 향한 모성애는 잘 알고 있지만 저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몰아세우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너무 지칩니다. 성인이 됐는데도 여전히 저를 자신의 분신 여기듯 하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불안과 우울이 심해집니다. 저의 극단적 시도가 미수로 그친 뒤 중증의 우울증과 강박증 진단을 받고 일 년간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그 후로 증상이 많이 호전됐지만 대학 입시를 계기로 어머니와 충돌하면서 다시 불안증이 심해졌어요. 병원을 가겠다는 저에게 어머니는 "한 번 갔으면 됐지 왜 두 번이나 가냐"며 되레 역정을 내십니다. 남편과 동생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린 채 "엄마의 유일한 희망인 네가 똑바로 살아야 한다"며 저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어머니로부터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김진수(가명·20·학생)
진수씨, 부모는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양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자녀의 독립입니다. 성인이 됐을 때 독립적인 존재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죠. 그런 관점에서 진수씨의 부모님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려면 스스로 판단해 시행착오를 하며 성장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진수씨의 어머니는 자식이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듣고 일탈 없이 성장하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건 용납이 안 되고 불안했을 거예요. 대학을 결정할 때도 진수씨의 의견을 듣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길 강요하셨죠. 자식을 독립적인 존재로 키우기보다 자신의 품 안에 두길 원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개입이 전혀 없었죠. 자녀의 육아와 교육에서 아버지는 철저히 방관자였습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과도한 책임감을 떠안게 됐어요.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자녀 교육으로 인한 또 다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회피했던 것일 수 있어요. 부모 중 한 사람이 자녀 교육을 전담하게 되면서 그 모든 책임도 오롯이 지게 되는 구조가 되어요. 어머니 역시 자신이 홀로 감당하는 자녀 교육의 무게로부터 큰 불안을 느꼈을 거예요. 어머니는 진수씨의 미래나 성공을 자신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문제는 진수씨에게 강요하는 것들이 진수씨 자신이 아닌 어머니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삶이라는 점이죠.
진수씨의 어머니는 자식이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데 미숙한 사람이에요. 진수씨가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혼자 선택을 하고 뒤따르는 성공과 좌절의 경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끌고 나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기는 것이죠. 하지만 어머니는 자기 불안 때문에 그 모습을 도저히 그대로 볼 수 없었어요. 진수씨를 자신의 통제 범위 안에 두고, 그로써 자신의 불안감을 낮추려고 했던 것이죠. 하지만 자신의 불안이 일시적으로 낮아지더라도 진수씨는 독립성을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상 자기주장을 점차 하게 되고 결국 어머니는 더욱 불안해지게 됩니다.
어머니는 부부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을 진수씨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 통제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진수씨는 이른바 '삼각관계의 희생자'가 됐죠. 극단적 시도를 한 자녀가 우울감을 호소했을 때 병원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어머니의 불안이 작용했을 거예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치료를 통해 진수씨 마저 정서적으로 독립해버리면 본인이 너무나 불안해지는 것이죠. 그건 진수씨를 의지한다기보다, 자신의 불안을 진수씨에게 전가하고 있는 거예요. 본인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선 믿을 만한 존재가 늘 곁에 있어야 하니까요.
동생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진수씨와 달리 동생이 자신의 불안을 계속 건드리기 때문이죠. 동생은 어머니의 뜻을 따라주지 않고, 통제가 되지 않아 늘 어머니를 불안하게 합니다. 동생과의 감정적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진수씨에게 쏟는 거예요. 겉보기엔 장남에게만 모든 애정을 쏟는 것처럼 보이는데 문제는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이 괴롭다는 거예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릴까봐 불안이 생기고, 기대에 충족하지 못했을 땐 자괴감이 들어 우울해집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더 어려워져요. 죄책감까지 느끼게 되죠.
진수씨, 결국 어머니의 통제는 자기 불안 때문이에요. 그런 어머니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건 일시적으론 어머니를 위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어머니께도 좋지 않은 선택입니다. 부모로부터 심리적인 거리를 두고, 부모의 현 상태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해요. 어머니를 바꿀 순 없지만 진수씨 자신을 바꾸는 건 가능합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진수씨에겐 지금이 일생일대의 기회예요. 어머니에 대한 과도한 부채의식을 내려놓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삶이 뚜렷해야 어머니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어머니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니까요.
물론 어머니의 말을 거슬러서 결과가 좋지 않거나 나중에 후회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삶에서 완전한 만족이란 있을 수 없어요.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때로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으며 내면의 힘을 축적해가야 합니다. 조금 늦을지 모르지만 재능이나 잠재성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과정을 거쳐 빛을 발하게 되는 거죠.
지금부터라도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춰야 해요. 진수씨도 내심 느끼고 있듯, 그 과정에서 전문가와의 상담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상담 자체가 신뢰할 만한 관계를 형성하며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이거든요. 여의치 않다면 가족 바깥으로 눈을 돌려, 진수씨를 존중해주는 믿을 만한 친구를 만나 자신을 표현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성인이 된 진수씨가 인생에서 내면의 잠재성을 마음껏 펼치면서, 그로부터 오는 진정함 삶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