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에 걸린 초기 환자의 기억력·사고력 저하를 늦춰주는 신약 ‘레카네맙(Lecanemabㆍ상품명 레켐비)’에 대해 '가속 승인(Accelerated Approval)'을 부여했다고 6일(현지시간) 밝혔다.
가속 승인은 위험한 질병 치료에 필요한 신약의 신속한 개발을 위해 도입된 패스트 트랙(fast track)으로, 2~3상 임상 시험 후 신약 후보 물질의 유망성이 입증되면 부여된다.
이에 따라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레카네맙은 2주에 한 번씩 정맥주사하는 방법으로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투여될 수 있다. 에자이 등은 연간 치료비가 2만6,500달러(3,400만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투여 빈도를 격주에서 월간으로 줄여 치료비를 절반가량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제약사측은 설명했다. 이는 기존에 승인 받은 서너 종류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보다 저렴한 편이다.
레카네맙은 알츠하이머병 유발 물질로 알려진 뇌 속에 쌓인 '아밀로이드-베타(amyloid-β) 단백질 플라크(plaque·덩어리)'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억력ㆍ사고력 저하를 늦추는 효과를 3상 임상 시험을 통해 입증했다.
아직까지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물질이 정확히 무엇인지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속에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응집한 플라크가 뉴런(신경세포)에 장기간 쌓여서 나타난다는 이른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가설'이 일부 설득력을 가졌다.
이에 따라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제거를 목표로 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실패를 거듭해 왔지만 연구자들은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제거를 포함한 복합적인 치료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크리스토퍼 반 다이크 미국 예일대 알츠하이머병 연구단장 등이 주도한 다국적으로 시행된 3상 임상 시험 결과가 세계 최고 의학 저널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지난해 11월 29일 발표됐다.
3상 임상시험은 초기 알츠하이머병(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 인지 장애 또는 경도 치매) 환자 1,795명(50~90세, 898명은 레카네맙을, 897명은 위약을 투여)이 참여해 2주마다 레카네맙을 주입했다.
그 결과, 레카네맙 투약 18개월 후 ‘임상 치매 척도(CDR-SBㆍ범위 0~18, 점수가 높을수록 장애가 심각함)’ 기준선 대비 개선 정도에 대해 위약군 대비 27%가 개선되는 효과를 나타냈다.
하지만 레카네맙 효과가 미미하고 환자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다. 뇌 스캔은 뇌출혈(참가자의 17%)과 뇌부종이나 삼출액이 있는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13%)이 생길 위험이 나타났다. 또한 레카네맙을 투여한 사람의 7%가 부작용으로 투약을 중단한 바 있다.
워싱턴대 신경학자 조이 스나이더 박사는 “레카네맙은 아직 치료제가 아니어서 질병 진행을 멈추게 하지 못하지만 속도는 상당히 늦춰준다”며 “이는 환자가 6개월~1년 더 운전을 할 수도 있음을 뜻한다”고 했다.
반면 밴더빌트대 신경학자 매튜 슈래크 박사는 “이 약 효과는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 약간 못 미치는 것 같다”며 “대부분 환자는 효과를 인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슈래크 박사는 “의미 있는 개선을 위해서는 18점 척도에서 최소 1점은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레카네맙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스나이더 박사는 레카네맙은 한 달에 2번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과 함께 뇌부종과 가벼운 뇌출혈 등 부작용을 포함한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FDA는 임상 시험 과정에서 혈액 응고 방지제 복용자 2명이 숨진 것과 관련해 의사들에게 혈액 응고 방제제를 복용하는 환자에게 레카네맙을 처방할 때는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 전 세계 치매 환자가 1억3,900만 명으로 예상하는가 하면 국내에서도 2040년 치매 인구가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치매 진단법은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CT)이 가장 정확한 것으로 꼽힌다. 하지만 비급여 항목이어서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을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뇌척수액 검사는 50만 원 수준으로 비용이 절반 정도이지만 검체(샘플)를 얻기 쉽지 않고 환자 불편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