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그룹 경영진들이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 현장에서 저마다의 철학을 품고 종횡무진 움직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8일(현지시간) SK그룹 계열사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을 체험하며 신규 사업에 힘을 불어넣었고, 정기선 HD현대그룹 사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전시관을 부지런히 다니며 산업계 흐름을 꼼꼼히 탐구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그룹의 미래를 그려보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을 찾아다니는 등 폭넓게 움직였다.
재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로 해외 출국이 쉽지 않았던 최근 3년 동안 산업 기술이 무섭게 발전했다"며 "기업 수장과 경영진들에게는 IT 발전과 트렌드 흐름을 오랜만에 볼 수 있는 무대였다"고 봤다.
국내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현장을 찾은 최 회장은 6일 SK가 설치한 전시장과 푸드트럭을 깜짝 방문했다. 당초 전날 전시관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수행비서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바깥 일정을 미뤘다고 SK측은 전했다.
처음 찾은 CES 현장에서 최 회장은 SK바이오팜이 전시한 착용형(웨어러블) 의료기기 중 '제로 글라스'를 써봤다. 첫째 딸 최윤정 SK바이오팜 수석매니저를 지원 사격한 셈이다. 제로 글라스는 뇌파와 심전도, 환자 움직임 등 생체 신호를 감지해 뇌전증 발작을 예측하는 기능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장 관람을 마친 최 회장은 센트럴 홀 외부에 SK㈜가 마련한 푸드트럭으로까지 약 300m를 직접 걸어가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체유 단백질로 만든 제품들을 직접 맛봤다.
크림치즈와 아이스크림을 경험한 최 회장은 "맛있다"며 "기존 제품(일반 유제품)이랑 다른 걸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함께 있던 취재진에게 "탄소 감축을 어떤 형태로 할지, 기술적으로 잘 풀어갈지는 항상 고민하는 주제"라고 강조했다.
정 사장도 같은 날 CES에 참가한 국내외 글로벌 기업 전시장을 찾아 주요 제품과 신기술 현황을 살폈다. 세계적 보트 제조사인 미국의 브런즈윅, 세계 최대 농기계 제조업체 존디어,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 현대모비스, LG전자, 삼성전자, SK 전시장을 연이어 방문한 그는 "각 분야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비전과 기술력을 보며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완전 자동화 굴착기를 전시해 둔 세계 정상의 농기계업체 존디어 전시관 관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전해졌다. 농기계는 아니지만 건설용 굴착기를 제조·판매하는 HD현대그룹 계열사 현대제뉴인도 내년 전동화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인 터라 관심이 더 많았을 거란 후문이다.
LS그룹은 이번 행사에 전시관을 차리지 않았지만, 구 회장은 경영진과 함께 라스베이거스를 찾았다. 범 LG가(家) 구성원인 그는 국내 기업 전시장을 꼼꼼하게 둘러본 뒤 LG전자의 기술력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이번 행사와 별도로 테슬라, IBM 양자컴퓨팅 연구소 등 글로벌 선진 기업을 직접 방문, LS전선·LS일렉트릭·LS MnM·LS엠트론 등 주요 계열사들의 북미 사업 전략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LS그룹 관계자는 "전력 인프라 및 배∙전∙반(배터리∙전기차∙반도체) 산업의 중심인 북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