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운동'했는데, 성적이 나쁘다?

입력
2023.01.0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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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70대 여성 환자 K씨는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시행해 보니 콩팥의 사구체여과율이 36mL/분으로 나타났다. 석 달 전 42mL/분에서 6mL/분이나 떨어진 것이다. K씨는 3년 전 사구체여과율이 60mL/분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이 확인돼 만성콩팥병 진단을 받았다.

사구체여과율이 더 떨어져 15mL/분 미만이 되면 ‘말기 신부전’으로 진단하며 혈액투석을 시작하거나, 콩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동안 약물 치료와 식사, 운동 요법 등을 잘 지켜서 콩팥 기능도 그런대로 잘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꽤 나빠진 것이 확인된 것이다.

검사 결과를 보고 K씨에게 “식사량이 너무 많으시고, 소금 섭취도 많으셨네요”라고 말했더니, 그는 “많이 먹지 않았고, 싱겁게 먹었는데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은 노력했는데도 결과가 나빠졌다는 말을 들으니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추가 대화에서 그의 ‘노력’에 허점이 있었음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얼마 전부터 불면증을 겪게 된 K씨는 잠이 잘 오게 해준다는 말을 듣고 매일 저녁 바나나와 우유를 먹었다고 한다. 식사를 평소대로 하면서 바나나와 우유를 추가로 먹으면 체중이 늘 수 있다. 만성콩팥병 환자가 주의해야 할 칼륨 과다 섭취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는 또 “불면증에 좋다고 해서 산조인(酸棗仁ㆍ멧대추 씨)과 대추를 넣고 달인 물도 자주 마셨다”라고 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산조인, 대추를 차로 끓여서 마시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만성콩팥병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K씨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라고 주장했지만 ‘시험 성적(검사 결과)’이 나빠진 원인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그나마 K씨는 자신의 일상을 정직하게 말해 성적이 떨어진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일부 환자는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는 탓에, 의사가 원인을 찾기 힘들다. 평소 술ㆍ담배를 즐기고 운동도 하지 않다가 병원 진료를 앞두고 ‘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2~3주 정도만 노력해도 소변과 혈액검사 결과가 예상보다 좋게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의사는 검사 결과만 보고 환자가 평소 건강한 생활 습관을 잘 실천하고 있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만성질환자는 금연, 절주, 운동, 적정 체중 유지, 싱겁게 먹기 등 생활 수칙을 지켜야 하며, ‘정기 진료’도 빠뜨리면 안 된다.

그런데 아무리 꼬박꼬박 병원에 다녀도 의사에게 평소 있었던 사실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면 정기 진료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신장내과 의사는 환자의 사구체여과율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어도, 그 원인까지 척척 알아내기는 어렵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자신의 질병 또는 질병이 나빠지게 한 원인을 숨긴 채 의사가 찾아내는지 지켜보기도 하는데, 이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의사는 해결사나 슈퍼맨이 아니다. 점괘가 필요한 사람은 차라리 점쟁이를 찾아가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의사의 잔소리가 성적표를 나눠주던 선생님의 훈화 같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잔소리나 꾸지람의 밑바탕에는 애정이 깔려 있다.

만성질환 치료라고 하는 긴 여정에서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환자들의 치료 성적이 더 좋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