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대 강' 무한 반복 땐 '제2의 전장연' 사태 재연"… 갈등 조정자가 절실하다

입력
2023.01.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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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지하철 탑승 시위 2주간 휴전
오세훈 시장 면담 전망도 밝지 않아
1년 넘게 중재 역할 찾아보기 힘들어
갈등중재 독립기구 설치 필요성 제기

새해 첫 출근길부터 격렬하게 충돌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서울교통공사가 2주간 ‘휴전’에 들어갔다. 양측 합의에 따라 전장연은 5일 아침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선전전만 진행했다. 단 잠정 합의다.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20일부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할 계획이다.

전망은 밝지 않다. 오 시장은 “안 만날 이유가 없다”면서도 ‘조건 불가’를 내걸었다. 이에 전장연은 “법원 조정안 수용 요청도 조건에 해당하느냐”며 반발했다. 법원은 시위를 중단하는 대신 내년까지 역사 19곳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서울시에 권고했다.

2021년 12월 3일 시작된 출근길 시위는 숱한 논란을 낳았다. 외면받아 온 ‘장애인 이동권’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시민 불편을 초래하는 강경 투쟁 방식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 것도 사실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런 식의 ‘무한 대치’가 1년 넘게 이어진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할 ‘소통’ 통로가 없는 탓이다.

"서울시·정치권, 조정자 역할 되새겨야"

많은 이들이 전장연 사태를 키운 요인으로 ‘중재의 부재’를 꼽는다. 과거에는 첨예한 갈등 이슈가 터지면 시민사회나 종교계가 나서 해법을 도출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하철 시위에선 조정자를 자처하는 단체가 없었다. 시민사회가 분열된 측면이 크다.

사정이 이렇다면 당사자 간 타협이 중요하다. 서울시의 양보가 좀 더 요구된다. 지자체에는 분쟁과 갈등을 해결할 ‘의무’도 있어서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장애인 예산 확충과 인프라 구축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해법을 찾아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절실하다”며 “그 책임이 있는 주체가 서울시”라고 말했다.

갈등을 초래한 근본 원인에서 절충 실마리를 찾는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전장연이 지하철 시위를 재개한 건 2023년도 예산안에 국회 여러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장애인 권리예산 증액분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전장연 측 증액 요구분(1조3,044억 원)의 0.8%(106억 원)만 수용했다. 전장연의 입장과 현실의 간극이 큰 만큼 정치권에도 개입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야 공히 지하철 시위 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적극적 중재를 주문했다.

"전장연·서울시, 여론 귀 기울여 절충점 찾아야"

서울시와 전장연 모두 민심에 귀 기울이는 자세도 보여야 한다. 탑승 시위 때면 어김 없이 “왜 지하철을 볼모로 삼느냐”는 항의가 빗발쳤고, 물리적 충돌도 빈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민생에 지장을 주는 불편에 적대적으로 변한 여론을 전장연이 받아들여 시위 방식 재고 등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얘기다.

거꾸로 서울시 역시 시민 불편을 탑승 자체를 가로막는 제재 수단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장애인 이동권 필요성에 공감하며 활동가들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시민들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의 장애인 복지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0.6%로,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9%)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조한진 대구대 장애학과 교수는 “이동의 자유는 기본권이자 인권”이라며 “이 참에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려해 차제에 갈등을 중재하는 독립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보혁 대립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사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과격 시위와 사법당국의 수사,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이제 노사분규 못지않게 사회적 분쟁도 중요한 의제가 됐다”며 “중앙노동위원회 같은 분쟁 조정 장치를 마련하고 법ㆍ제도 역시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표향 기자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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