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인기가 서울의 '비행금지구역(P-73)'을 침범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P-73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경호를 위해 집무실과 관저를 중심으로 설정한 군사작전구역이다.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 침투 이후 군 당국은 서울 상공 진입은 인정하면서도 "P-73 공역 침범 사실은 없다"고 줄곧 부인해왔다. 국회에도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보고했다. 하지만 열흘 만에 사실관계를 뒤집으면서 은폐 의혹과 함께 군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5일 기자들과 만나 “전비태세검열실 조사 결과 서울에 진입한 적 소형 무인기 1대로 추정되는 항적이 P-73의 북쪽 끝 일부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략 서울시청 인근 상공으로 추정된다. 합참이 그간 공지와 브리핑을 통해 밝힌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심지어 이날 오전까지도 합참은 '용산이 뚫렸다'는 주장과 언론 보도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거듭 일축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입장을 바꿨다. 무인기 침범 당시 서울 상공 감시 레이더에 항적이 일부 포착됐지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는 '점' 형태여서 작전요원들이 무인기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군 당국자는 "지난해 P-73에서 상황 발생만 100건이 넘었다"며 "항적이 포착됐다고 새 떼를 향해 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합참 검열과정에서 점으로 된 항적들을 연결하고 상황을 다시 들여다봤더니 무인기 침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결론이 바뀌었다고 한다. 작전요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비치는 대목이다. P-73 침범 가능성에 대해 "근거 없다"고 역정을 내던 군 당국이 되레 '근거 없는' 말로 여론을 호도한 셈이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통합관리 시스템에 따르면 P-73은 용산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 인근 특정지점을 기준으로 반경 약 3.7㎞(2해리)까지 설정한 비행금지구역이다. 용산구를 비롯해 서초·동작·종로·중구 일부를 포함한다. P-73 안에서 항적이 포착되는 경우 경고방송·경고사격에 이어 격추까지 가능하다.
군 당국은 이 같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또한 P-73 완충구역(버퍼존)의 경우 당초 서울 외곽지역까지 설정했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현재 범위로 줄인 상태다. 자연히 더욱 강도 높은 대응이 필요하지만 군은 이번 무인기 침투과정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합참은 "국민 편익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작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완충구역이) 있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고 본다”고 면피하는 데 급급했다.
비판이 커지자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육군 대령)은 "당시 작전요원들에 의해 최초 확인된 사실에 입각하여 발표했으나 이후 전비태세검열실이 종합적인 조사과정에서 정밀 분석한 결과를 설명드린다"며 "언론 보도에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