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먹는 임신중지(낙태) 약'을 약국에서 살 수 있게 됐다. 배송업체가 임신중지가 금지된 주(州)로 임신중지 약을 배달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판단도 나왔다. 지난해 7월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박탈당한 미국 여성들의 임신 관련 자기 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 차원의 움직임이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전날 홈페이지를 통해 임신 중단에 사용되는 약물인 미페프리스톤의 약국 제조와 판매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의사의 처방전은 필요하다.
2000년 9월 미국 내 시판이 승인된 미페프리스톤은 임신을 유지하는 호르몬 작용을 차단해 유산을 유도하는 약물로 임신 10주(70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9년 미국 임신중지 중 42%가 약물로 이뤄졌다. 지난해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사건' 판례가 뒤집힌 후로 관련 약물의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고 미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전까지 미페프리스톤은 반드시 의사에게 받아야 했다. 원격진료를 통해 우편 혹은 약국 수령도 가능해졌지만, 제조는 의사의 몫이라 최대 몇 주를 기다리는 경우도 생겼다. FDA의 결정으로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 접근성이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의 전국적인 약국 체인 월그린은 FDA의 발표 하루 만에 "매장에서 미페프리스톤 약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 법무부는 연방우체국(USPS)이 임신중지 금지 지역에 임신중지 약물을 배송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임신중지 합법 여부가 주마다 달라지자 배송업체의 약 배달이 처벌 대상인지 논란이 일었다. 법무부는 "관련 약물이 임신 중단뿐 아니라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므로 배송만으로 법 위반이라고 볼 순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배송만 불법이 아닐 뿐 임신중지가 불법인 지역에서 약을 사용한 사람은 처벌받을 수 있다.
미국 정부의 먹는 임신중지약 관련 잇따른 조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방침에 적극 보조를 맞추는 취지다. 헌법으로 보장되던 임신중단권이 사라진 이후 미국에서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50개 주 중 12개 주 이상이 주법으로 임신중지를 금지시켰고, 약을 통한 임신중지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보건복지부에 "미페프리스톤에 대한 접근을 최대한 허용할 모든 방법을 확인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11·8 중간선거로 출범한 각 주의회에선 임신중지 이슈 주도권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미네소타에선 주법에 임신중지권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1호 법안'으로 내세웠다. 네브래스카주에서는 늘어난 공화당 의원 수를 바탕으로 이번에야말로 임신중지 금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벼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