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하라

입력
2023.01.04 19:00
26면
이주노동자 노동권 주거권 침해 여전 
정부, 헌재 모두 ‘사업장 변경 제한’ 고수
난민도 외국인 노동력 관점에서 접근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요즘처럼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일이 곤혹스러운 적이 없다. 다른 이들의 권리 확대를 자신의 권리 축소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권(교육권·주거권·건강권 등)을 제한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흔해졌다. 예컨대 이주노동자의 가족에게 내국인처럼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허용하거나, 혹은 강력하게 이동권을 요구하는 장애인 단체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옹호하면 “그 사람들은 마치 시혜를 권리로 안다”는 냉랭한 반발이 나온다. 보편성이라는 인권적 관점은커녕, 이렇게 해야 ‘공동체에 이익이 된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으로 설득하려 해도 이들은 바위같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주인권 연구자 우춘희씨가 지난해 르포르타주 '깻잎 투쟁기'에서 폭로했듯 근로계약서에도 없는 공짜 노동, 임금 체불, 사업주의 불법적인 여권 압수, 여성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성폭력은 일상적이다. 제도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압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사업주들에게 보장하고 있는 게 근본 문제다. 외국인 인력관리 제도인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이 독소조항이다. 이주노동자들을 ‘현대판 노예’로 만들어 폐지 요구가 오래됐지만 정부도 사법부도 폐지할 의지가 없다. 해당 규정(외국인 고용법 25조)에 대한 위헌 소송에 헌법재판소는 두 차례(2010년, 2022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원활한 인력관리 필요성'이 근거였다.

지난주 정부가 ‘고용허가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주노동자의 체류기한을 4년 10개월(1차례 연장 가능)에서 최소 10년으로 연장하기로 하는 등 이주노동자의 정주(定住)를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은 전향적이다. 하지만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은 요지부동이다. “어렵게 데려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도망가면 안 된다”는 사업주들의 볼멘소리에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이 볼모로 잡혀있는 셈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숙소 문제도 사고가 날 때만 반짝 주목받는다. 냉기가 도는 비닐하우스 안 가건물에서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비극이 생긴 지 2년이 지났지만 이들의 잠자리는 여전히 춥고 열악하다. 정작 정부의 대응은 올해 이주노동자 숙소 개선 지원 예산 0원(고용노동부), 지원사업 연말 일몰(농림축산식품부)이다.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 외면은 마주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그리고 환대하라’는 도덕률을 지치지 않고 설파해야 하는 이유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윤리적 당위론의 효과가 없다면, 경제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방법밖에 없다. 예멘 난민(2018년), 아프가니스탄 난민(2021년) 사태 이후 경계심이 높아진 난민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소송 남용, 허위 난민 신청 폭주 등의 이유로 난민신청을 제한하는 법을 제출했고 최근 국회는 법안 심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처럼 '국경 수호' 논리로 접근하는 방식은 비현실적이고 소모적이다. 난민 신청자들이 실제로 본국에서 정치·종교적으로 박해를 받는지, 그들의 진심은 무엇인지 우리나라의 행정력으로 판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난민 신청자 대다수가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주노동자 노동력 활용 관점에서 문제를 푸는 게 합리적이다. 국내에 입국한 예멘, 아프가니스탄 난민 대부분에게 지역에서 모셔가듯 일자리를 준 까닭은, 난민이건 아니건 누구의 일손 하나라도 더 필요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이들의 강퍅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어떻게라도 우리의 이웃임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