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국 연구자의 고백

입력
2023.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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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란 퍼즐을 맞추는 게 본업인데 솔직히 중국을 아직 잘 모르겠다. 이런 패배적 고백은 중국 연구가로서 새해를 포부 있게 시작하는 분위기에 전혀 영이 서질 않는 말이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나의 중국 공부는 미국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절판된 '7막 7장'이란 책을 읽고 등골에 전율을 느껴 미국 대학에 덥석 지원해 놓곤 국내 대기업 회장님들한테 편지를 쫙 보냈다. 도와주면 나중에 갚겠다고. 영화를 보면 이럴 때 꼭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던데 나의 현실에선 한 명도 답장을 해 주지 않았다. 다행히 미국 대학에서 장학금이 나와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전공은 심리학이었지만 어느 날 중국어를 가르치는 '미인 강사'가 왔다는 말을 듣고 한 번 구경 갔다가 눌러앉았다. 매 학기마다 중국어를 수강했다. 그게 인생 경로를 바꿨다. 미국에서 중국어 4년 과정을 마치고 중국에 가서 다시 11년을 살았지만 한참이 되어서야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겨우 깨달을 정도로 눈치가 무뎠다.

중국에 한국인이 많이 살던 때였다. '100만 명'이라는 말이 회자되던 때였으니까. 지금과 달리 중국 붐이 있었고, 대입 학력고사 서울대 중문과 점수가 영문과 점수를 추월했다라는 뉴스도 나왔다. 한국에서 단체 관광객이 매일 왔다. 그들이 며칠 둘러본 후 꼭 하는 말이 있었다. "중국은 말로만 사회주의지, 사실은 자본주의다." 나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다. 그 말이 얼핏 맞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맞지 않다는 것까지는 감이 오는데 그것을 조사해 볼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전(前) 포스코차이나 김동진 사장은 당시 베이징에서 필자에게 "중국은 책을 봐서 알 수가 없는 나라다. 중국은 가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나라다. 그런데 중국은 가봐도 알 수가 없는 나라다"라고 했다. 바로 내 경우였다. 중국에 있으면서 중국을 모르는 사람.

학자들은 사회주의 중국을 영화 '트루먼 쇼' 같은 '극장국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나도 현실처럼 꾸며진 무대가 아니라 무대 뒷면을 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베이징대와 칭화대 박사학위에 지원했다. 합격하고 나서 인민일보사 기자 지인한테 어느 학교가 좋겠냐고 물으니 대뜸 "당신의 진짜 목적은 공산당 속내를 알아보려고 하는 거지?"라고 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칭화대학을 추천했다. 당시 칭화대학을 '칭화당교(清华党校)'로 부를 정도로 규율이 셌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흥미로운 경험을 참 많이 했다.

최근 나를 포함해 중국 연구자들은 큰 좌절을 겪었다. 시진핑 3기 정치국 상무위원회 인선을 앞두고 누가 낙점될 것인가를 두고 많은 예측이 있었지만, 모두들 낭패를 했다. 중국을 40년간 연구한 미국 동부 대학의 한 저명한 학자는 이번에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화려한 재기를 예측했지만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번처럼 모두가 다 틀린 적도 처음이라고도 했다.

주목할 점은 공산당 문헌 분석을 통해 예측했던 학자들도 죄다 틀렸다는 점이다. 과거 공산당 인선과 현재를 비교, 그 패턴의 연장선에서 미래를 유추하려는 합리적 사고 과정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분석에 있어서 큰 숙제를 안긴다. 더는 기존의 관성적 프레임으로 '시진핑의 중국'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