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67) 한미협회장은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한미협회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의 새해 인터뷰에서 7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바탕으로 맺은 안보 동맹이 산업 경제·기술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로 한미 동맹이 70년이 됐다. 어떤 의미가 있나.
"미국이 안보 동맹을 맺은 나라가 많지 않다. 미국도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가 있었지만, 한국으로선 안보 비용을 줄이고 경제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도움을 받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가서 미국식 가치·제도 같은 것들이 한국의 제도와 사고 방식에 녹아들면서 사회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도 많이 노력했고 그 결과 일방적으로 시혜받던 관계에서 벗어나 미국이 우리를 협력 파트너로 보는 단계까지 왔다고 본다."
-동맹으로서 미국의 역할을 느낀 사건이 있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이다. 반미 정서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노 전 대통령이 실용 차원에서 결정했다.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 때 재협상했다. 이를 통해 한미가 양자 FTA로 스몰 블록이 됐는데, 실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의미가 크다. 교역이나 기술 이전, 기술 협력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게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의 바이오젠이 합작해 삼성바이오에피스 같은 회사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한미 FTA로 제약이 없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미 FTA를 통해 한미 간 산업 협력의 틀이 확 바뀐 것이다."
최 회장은 공직 재직 중 겪었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미국의 금융 패권을 체감했다고도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축통화인 달러를 기반으로 한 뉴욕 중심의 금융 패권의 어마어마한 힘을 느꼈다. 당시 위기는 IMF 패키지 덕도 있었지만, 결국 단기차입금을 만기 연장하고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통해서 극복했다. 그때 만기 연장과 외평채 발행에 미국의 재무부, 연방준비이사회(FRB)가 나서고, 당시 뉴욕을 주름잡던 금융기관, 증권사들이 움직였기에 가능했다. 군사적 측면뿐만 아니고 산업 금융 측면에서도 미국이라는 좋은 동맹을 가진 건 도움이 된다는 걸 많이 느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 칩·과학법 등 자국산업 보호주의를 펴고 있다. 중국 봉쇄를 노린 것 아닌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새 강대국이 떠오르면 기존 강대국이 경계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미중 갈등도 이 함정으로 봐야지, 경제적으로 설명할 게 아니다. 중국이 세계 제1국, 적어도 아시아에선 제1국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한 미국은 용납 못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주도했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미국, 일본은 빠졌지만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모르던 영국, 프랑스는 들어갔다. 그러다 미국이 속내를 드러내자 '차이나 엑소더스'라며 빠지겠다고 한다. 미국이 중국의 위협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본다."
-한국 입장에선 '안보는 미국, 교역은 중국' 틀이 깨진다.
"굉장히 어렵다. 일단 중국과는 경제 문제는 경제적으로 풀자는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안보 문제는 비공식 채널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는 한국의 선택을 이해해 달라고 설득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긴장 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역할도 해야 한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나 칩4 동맹 참가 등은 어떻게 보나.
"미국이 IPEF가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으니 우리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채 참여하면 된다. 칩4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개발 역사를 보면 우리는 들어가는 게 맞다. 미국이 1970년대 반도체 산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한국, 일본, 대만, 네덜란드를 포함해 공급망을 만들었다. 출발부터 한국을 포함한 칩5였다.
-한미 동맹이 발전적으로 나아갈 방향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이점이 많다. 무엇보다 미국이 군사적·경제적·기술적 분야에서 세계 최강이다. 한국의 산업 역량도 커지고 우수한 기술, 효율적 제조 시스템을 갖게 돼서 동맹이 산업 협력 쪽으로 발전할 것이다. 미국의 기술을 풀어서 물건을 만드는 파트너로 한국을 우수하게 평가하면서 보는 눈도 달라졌다. 다만, 미중 사이에서 경제 이슈는 경제 논리대로, 안보는 중국을 설득하면서 갈 수밖에 없다."
<최중경은>
-1956년 경기 화성시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학·석사,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1978년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기획재정부 1차관, 지식경제부 장관
-국제부흥개발은행 상임이사, 주필리핀 대사
-2016년 6월~2020년 6월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2021년 2월~ 현재 제8대 한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