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癸卯年) 새해 새날이 시작됐다. 기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희망과 기대,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새해가 주는 선물이다. 땀으로 채워야 할 격동의 시간을 앞두고 있지만 서로 위로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한 해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도 잊어선 안 된다.
새해 대내외 여건은 거센 도전이 예상된다. 급격한 통화 긴축에 따른 글로벌 경기 위축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악화할 경우 공급망 위기의 부작용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아슬아슬한 상황을 반복하는 북한 문제, 정치 사회적 갈등까지 겹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신년사에서 위기극복을 위해 “대한민국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선언했다.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새해 첫날 국정기조를 국민에게 설명하며 집권 2년 차 심기일전에 나선 건 고무적이다.
정치는 위기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새해는 정부로선 팔을 걷어붙이고 국가 과제를 이행할 기회이다. 국가 미래를 위해 이 시간을 분열, 불통과 맞바꾸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작년 3월 당선 인사에서 밝힌 대로 국민을 위한 정치, 민생을 살리고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는 대통령과 여당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여야 대립이 긴요한 정책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협치 틀부터 조속히 구축할 필요가 크다. 야당도 대결적 자세를 넘어 협치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고, 위기극복을 위한 손을 잡아야 한다.
험난한 대내외 악재들은 경제여건을 직격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시장은 부채의 약한 고리를 붕괴시켜 걷잡을 수 없는 위기를 부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엄중한 상황”으로 진단하고 극복방안으로 부채 위기관리, 수출진흥, 기술과 산업 혁신을 꼽았는데 맞는 방향이다. 성장 소강기를 구조개혁의 적기로 활용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3대 개혁론도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해 시급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개혁도 필요한 사회적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일방주의로 치달으면 대립과 갈등만 증폭될 우려가 크다. 불도저식보다는 국민 다수가 납득할 만한 공감의 기반을 속도감 있게 구축해 내며 차근차근 개혁을 향해 나아가는 ‘소통과 끈기’의 국정이 요구된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 상승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이나 아직 60% 가까운 여론이 국정운영 방식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잊어선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뚜렷해진 불평등과 양극화의 해소는 사회통합의 전제조건이다. 윤 대통령이 사회 양극화 완화를 위해 꼭 필요한 비정규직 차별 문제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취약계층이 빈곤 실업 질병 등 사회적 위험에 방치되지 않도록 진력하기 바란다.
강대강 대치 중인 남북관계는 북한 일탈 억제와 긴장완화가 시급하다. 미국 일본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와도 소통하며 북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위기가 커질수록 긴장완화 모멘텀의 기회도 함께 오는 만큼, 윤 정부는 담대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치보복을 일삼는 ‘검찰공화국’이란 오명도 신년에는 떨쳐내야 한다. 야권 수사는 공정성 시비를 낳지 않도록 적확하게 진행하고, 권력층 의혹에 대해서도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신뢰를 되찾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놀라운 반전과 성취의 기회로 삼았다. 위기 속에서도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이루고 새우에서 고래가 되는 꿈이 넘실거리는 것도 이런 역사 때문일 것이다. 분명한 점은 기적은 기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 검은 토끼의 해는 서로 공감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 필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