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작심삼일’을 100번쯤 해보자

입력
2023.01.01 06:30
20면
[한창수 교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한다. 지난해 이맘때 했던 것처럼 각자 뭔가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는 시기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운동을 시작하기도 하고, 외국어나 통계, 재무 회계, 심리 등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로 다짐한다. 직장에서는 더 이상 짜증 내지 않기를 결심하기도 한다. 만년 레퍼토리는 금주ㆍ금연일 것이다.

문제는 담대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며칠 되지 않아 아무도 모르게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독하게 뜻한 바를 이루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나는 수년 전 집 근처 헬스클럽에 1년치 이용권을 끊어 놓고 불과 몇 주 만에 발길을 끊어버렸다. 창피해서 운동화를 찾으러 가지도 못하고 그만 이사를 와 버렸다.

어린 시절 머리를 다친 이후 책 읽기에 어려움을 겪다가 학습법을 가르치는 강연자로 변신한 짐 퀵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마인드셋과 동기, 방법 중 한 가지 이상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가능성과 능력을 믿지 못하는 마인드셋 문제이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에너지 역할을 하는 동기 부족이 두 번째 이유이고, 셋째는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이고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내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한두 시간 걷거나 근육을 단련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였다. 친절하게 운동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으니, 운동 계획을 실천하는 동기 부여에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운동을 왜 시작하는지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고, 항상 그 시간에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을 찾아내곤 했던 게 문제였을 것이다.

절실하다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 내가 원하는 것이 불분명해 그저 남들이 좋다는 걸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뇌와 몸은 기존의 익숙한 상태를 선호하기에 새로운 시도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더 소모하기보다 원래대로 사는 것이 훨씬 더 쉽다. 게다가 사람은 하고 싶은 게 아무리 많아도 결국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이때 모방이론에 따른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한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2022년 초ㆍ중등 진료 교육 현황 조사’에서 학생 2만3,000여 명의 희망 직업을 조사해 발표했다. 초등학생의 희망 직업 상위 순위는 운동선수, 교사, 크리에이터, 의사 순이었다. 반면 중학생은 교사, 의사, 운동선수, 경찰관, IT 개발자 순이었고, 고등학생은 교사, 간호사, 군인, 경찰관, IT 개발자 순이었다. 초등학생의 희망 직업은 결국 눈에 자주 보이는 사람이었다. 소셜미디어ㆍ유투브 등 수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익숙해진 결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를 다룬 드라마가 유명세를 타면 관련 직업군에 대한 호감이 증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전에는 군인이나 대통령을 희망하던 소년들도 많았으리라. 중ㆍ고교생이 되면서 비교적 현실성을 고려하면서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희망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 보기에 좋아 보이고 남들도 좋다고 하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들이 좋아할 만한 직업을 장래 희망으로 받아들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르네 지라르는 인간 욕망이 늘 타인의 욕망을 모방해 생겨난다고 했다. 지위와 명예, 경제력도 왜 좋은지 모르면서 남들이 좋다니까 덩달아 욕망한다는 것이다. 모방된 욕망은 쉽게 꺼질 수 있다. 바란다고 다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강렬히 원한다면 다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뒤편에는 지독한 자기 관리와 노력이 숨어 있다. 자신이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기로 결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내가 어떤 것에 삶의 가치를 두고 살아왔는지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어떤 이는 돈과 경제적 성취가 가장 중요하고, 다른 이는 일과 경력의 성공,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혹은 도덕이나 영성에 가치를 두기도 한다. 사회ㆍ정치적 헌신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도 한다. ‘유일한 최고 가치’라는 정답은 없다. 그건 타고난 성향과 기질, 보고 배운 문화적 영향에 따른 것이다.

어쨌든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가치에 합당한 일을 선택하라.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 헌신과 도덕이 중요시되는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마음먹을 때 가진 패기는 며칠 지나지 않아 약해지기 마련이다. 작심삼일은 뇌과학적으로 ‘익숙함에 익숙한’ 뇌에 너무도 당연한 과정이다. 일하기 위해서는 자주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가 하는 일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작심삼일을 100번쯤 해보자. 1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이 하려 했던 일을 무사히 해낸 당신과 만날 것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