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현(고양 캐롯)의 시대다. 올 시즌 자유계약(FA) 신분으로 캐롯 유니폼을 입은 그는 연일 신들린 외곽포를 터트리며 한국프로농구(KBL)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올 시즌 25경기만에 102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며 KBL 역대 최소경기 ‘3점슛 100개’를 돌파했고, 경기당 평균 4.1개의 3점슛 득점으로 2위와 1개 이상 차이 나는 압도적인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경기마다 연속 3점슛 성공기록(현재 66경기)을 경신하고 있고, 2002년 서장훈 이후 20년 만에 9경기 연속 20점 이상을 올린 선수도 됐다. 현재 추세라면 우지원의 단일시즌 최다 3점슛 기록(197개)을 넘어 KBL 최초로 ‘3점슛 200개’ 고지를 밟을 수 있고, 문태영 이후 12년 만에 평균 20득점을 기록한 한국인 선수로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슛과 관련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전성현을 29일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만났다.
“문경은 선배와 조성원 선배의 장점을 모두 닮고 싶어요.”
겸손함과 자신감이 함축된 말이었다. 전성현은 한국 농구의 슈터 계보를 잇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던 선배들과 함께 거론되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면서도 “그러나 나는 아직 더 증명해나가야 한다"고 몸을 낮췄다. 그는 이어 “문경은 선배는 3점슛을 워낙 잘 넣었고, 조성원 선배는 투멘 게임, 포스트업 등 다양한 공격옵션도 가지고 있었다”며 “나는 두 선배의 장점을 모두 합쳐 현재의 3점슛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되 다양한 공격옵션까지 더하는 선수가 되는 게 최종 목표”라며 ‘완성형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현재의 ‘괴물 슈터’는 고교시절부터 이어진 악착 같은 슈팅 훈련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고교 졸업반과 대학 시절 '한 번에 500개 슛 성공'을 목표로 연습했다는 것은 KBL에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일화다. 이를 위해 700~800개의 슛 시도는 기본이었고, 많게는 1,000개의 슛을 쏘기도 했다. 당시 연습을 도와줬던 한상혁, 정인덕(이상 창원 LG), 최원혁(서울 SK) 등은 아직도 그를 만나면 “형(전성현) 연봉에 우리 지분이 들어 있다”고 말할 만큼 주변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전성현 스스로도 “내가 생각해도 그 친구들에게 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웃을 정도다.
동료들과 함께 다진 기본기가 만개하도록 길을 터준 건 김승기 캐롯 감독이다. 전성현은 안양 KGC시절부터 김승기 감독과 한솥밥을 먹으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전성현은 “감독님은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파악한 후 그 역할을 프리하게 수행하도록 해준다”며 “(나에게는) 슛에 관한 한 관대하게 풀어줬다”고 설명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신분이 된 그가 차기 행선지로 캐롯을 택한 가장 큰 이유도 김승기 감독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선뜻 캐롯 유니폼을 입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늘 우승권으로 분류되는 KGC와 달리 신생팀 캐롯은 아직 보여줄 것이 더 많은 ‘미완의 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이 오히려 그의 구미에 맞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전성현은 멤버가 좋은 KGC에 있기 때문에 지금의 성적을 내는 거다’라는 식의 말을 했는데, 이런 평가를 깨고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캐롯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KBL 역대 최고의 슈터로 자리매김했다. 팀과의 시너지 효과도 뛰어났다. 캐롯은 하위권에 머물 것이란 시즌 전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리그 중반까지 2~5위를 오가고 있다. 리그 3점슛 성공 합계 20위 안에 전성현, 이정현, 최현민, 디드릭 로슨 등 4명이 들어있을 만큼 모든 선수의 슛 감각도 절정에 올라있다. 전성현은 이에 대해 “시즌 전 9, 10위로 분류한 평가가 많았는데, 선수들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며 “또 한, 두 경기를 이기다 보니 선수들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캐롯은 리그 초반에 비해 승수를 쌓는 속도가 다소 늦어졌다. 전성현은 이에 대해 “캐롯은 신인급 선수들이 많은 젊은 팀”이라며 “이런 것들을 경험해보고 부딪혀야 다음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성현은 마지막으로 ‘봄 농구’에 대한 각오를 내비쳤다. 그는 “무조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이라며 “개인 기록만 좋게 남는 시즌이 아닌, 팀 성적도 잘 나온 시즌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