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명이 사상한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는 사전 경고를 무시한 채 경제 논리만 앞세워 시민 안전을 등한시한 인재(人災)였다. 터널을 지을 때 비용을 아끼려 화재에 취약한 값싼 플라스틱을 쓴 것이다. 과거 비슷한 사고가 있었는데도 대비하지 않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재난이 얼마나 더 되풀이돼야 하는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화재는 29일 터널을 지나던 트럭에서 시작됐다. 트럭 화물칸에서 난 불이 바람을 타고 인접한 방음벽에 옮겨붙었고, 터널 천장까지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2시간여 동안 터널 구간 830m 중 자그마치 600m를 태웠다. 차량 45대가 소실되면서 5명이 사망했다. 터널 내부가 검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가득 찼고, 삽시간에 천장이 녹으면서 불똥이 쏟아져 내렸다고 한다.
피해가 커진 건 터널 벽과 천장 소재가 투명 플라스틱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이었기 때문이다. PMMA는 방음터널용 다른 소재인 강화유리나 폴리카보네이트(PC)보다 낮은 온도에서 불이 붙고, 열을 더 많이 방출하며 잘 탄다. 하지만 가볍고 설치가 쉬운 데다 저렴해 많이 쓰인다. 방음터널 소재에 대한 불연 성능 기준이 없는 틈을 타 시공사가 안전보다 비용을 우선한 것이다.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와 시간은 충분했다. 한국도로공사와 감사원 등이 가연성 소재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경기 수원시 PMMA 방음터널에서 2년여 전에도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올 7월에서야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데 그쳤다. 방음터널은 법적으로 일반 터널이 아니라 안전점검도 받지 않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방음터널이 전국에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불쏘시개를 품은 터널이 곳곳에서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국 방음터널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는데 사후약방문이지만 이제라도 안전한 소재로 교체·보강해야 한다. 소재 기준은 물론 안전점검, 비상대피 등에 대한 규정도 빠짐없이 갖춰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