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끄는" 향기···명품 브랜드의 오스만투스에서 계수나무까지

입력
2023.01.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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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거문도에서 저절로 자라는 박달목서

편집자주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 격주 월요일 풀과 나무 이야기를 씁니다. 이 땅의 사라져 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허 연구원의 초록(草錄)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세계적인 명품을 만드는 에르메스, 샤넬, 입생로랑과 같은 브랜드는 오스만투스 향기를 흉내 낸 제품을 뷰티 업계의 주력 상품으로 내건다. 그건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오스만투스(Osmanthus)속 식물의 이름인데 향기를 칭할 때도 그대로 쓴다. 오스만투스 향에 대해 프랑스 향장협회에서는 그 향기가 상큼하고도 달콤한 과일 향과 어우러져 군침이 도는 단내가 나며 그 저변에는 나무와 섬유 향이 배어 있다고 평가한다. 서구에서 특히 열광하는 이유는 동양의 식물에서 추출하는 오스만투스가 이국적 매력을 더해주기 때문일 거다.

한자로는 목서(木犀)다. 나무의 재질이 코뿔소의 뿔처럼 단단하다는 뜻이다. 재질뿐만 아니라 나무줄기의 색감과 질감도 코뿔소의 피부를 닮았다. 전 세계적으로 목서속 식물 대부분이 동아시아에서 자라는데 모두 합치면 30종 정도 된다. 그중 향기로 제일 유명한 게 목서와 그 변종(또는 품종)인 금목서와 은목서다. 목서는 중국의 일부 지방에 자생하는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정원에 심어 기른다.

중국에서는 목서를 재배한 역사가 2,500년이 넘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 ‘산해경’과 초나라의 굴원이 지은 시편 ‘구가’, 진나라의 역사서 ‘여씨춘추’ 등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거기에 목서는 계수(桂樹)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중국의 신화 속 인물 ‘상아’가 사는 달나라에서 보름이 되면 옥토끼가 신들을 위한 약을 찧고 그 곁에는 계수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다는 이야기. 2007년 중국이 처음 달로 쏘아 올린 우주선의 이름도 ‘상아’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달에 가서 계수나무를 베어오라는 형벌이 신선 수련을 하던 오강(吳剛)이란 인물에게 내려졌는데 달나라의 계수나무를 베고 또 베어도 금방 되살아나서 그가 달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도 꽃이 옅은 오렌지 색깔인 금목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흰색 꽃이 피는 건 중국 원산의 은목서가 아니고, 일본 원산의 구골나무(키가 작은 관목)이거나 구골나무와 목서를 교배시켜 얻은 구골목서(키가 큰 교목)라는 재배품종이다. 그들을 합쳐 ‘천리향’이라 부르기도 한다. 경남 통영 시가지와 미륵도 사이를 도보로 왕래할 수 있는 해저터널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 그 양측 입구에 도열해 서 있는 키가 큰 나무들이 구골목서다.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거기 꽃이 자욱하게 피면 오스만투스 향기가 천 리를 가닿을 만큼 길게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저절로 자라는 목서는 딱 한 종이 있다. 박달목서다. 남쪽의 섬 지역에 아주 드물게 자라는 세계적인 희귀종인데 전남 거문도에서는 마음껏 자란다. 거문도는 제주도와 여수의 중간 지점에 있는, 행정구역상 여수시 삼산면에 속하는 제법 큰 섬이다. 고도, 서도, 동도가 사이좋게 모여서 거문도라는 섬을 이룬다. 그 섬들 곳곳에 박달목서가 산다. 몇 그루나 되는지 알고 싶어서 박달목서의 수를 하나하나 헤아린 적이 있다. 200그루 정도 세다가 박달목서의 국내 최대 군락지에 와 있다는 기쁨으로 나 혼자 주저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거문도 동도의 샬롬민박 마당에는 삼백 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박달목서 고목이 있다. 경이에 찬 눈빛으로 그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니 주인 부부가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거문도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유배지였는데 높은 벼슬을 하다가 이 섬으로 밀려난 그들 선조 때부터 귀한 나무로 여기고 이 박달목서를 살뜰히 보살핀 덕에 지금의 오래된 나무가 되었다고.

심어 기르는 목서는 짙은 향 때문에 틀림없이 고개를 돌리게 된다는 뜻에서 ‘당신의 마음을 끌다'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목서의 그 향기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우아한 향기가 박달목서에는 있다. 그 매혹을 알고부터는 박달목서가 만개하는 11월에 나는 거문도행 배편 예약 사이트를 자꾸만 기웃거리게 된다.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