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멜로드라마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연애 예능은 전성기다. 사람들은 더이상 가상의 이야기를 선호하지 않게 됐다. 일부 드라마는 러브라인이 전개를 방해한다는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연애 예능은 되고 멜로드라마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
"반가움에 속지 않을 거야." 언뜻 멜로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로맨틱한 대사지만 실제로는 한 연애 예능프로그램에서 전 연인에게 건네는 말이다. 각본이나 짜여진 연출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묻어나면서 멜로의 자리를 빼앗았다. 최근 예능가에 연애 예능, 즉 '남의 연애'를 지켜 보는 소비층이 급증했다. 방송사들의 특색 가득한 연애 리얼리티는 일부 출연진을 스타로 만들었고 프로그램은 연이은 시즌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연애 예능이 크게 확산됐지만 정작 드라마국의 사랑 이야기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최근 방송 중인 멜로 혹은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는 극히 적다. JTBC '사랑의 이해'와 넷플릭스 '썸바디'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사랑의 이해'는 2%대에 머물면서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썸바디'의 경우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와 멜로를 결합시켰으나 큰 반응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멜로를 향한 시청자들의 무관심이 이어지면서 업계에도 변동이 온 상황이다. 다수의 멜로 히트작을 쓴 김은숙 작가는 장르물로 핸들을 틀고 신작 '더 글로리'를 내놓았다. 정통 멜로를 탈피해 타 장르에 멜로를 살짝 얹는 방식으로 우회한 것이다.
왜 멜로는 더 이상 사랑 받지 못할까. 여기에는 대중의 달라진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이야기에서 현실성과 개연성을 중요시하는 안목이 높아진 데다가 장르물의 자극성을 이길 만큼의 메리트가 없다. 멜로만 내세웠다가는 시청률 하락을 면치 못하게 된 셈이다. 과거 비혼 및 비연애를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멜로 드라마의 부진 이유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리얼한 연애 예능들이 큰 사랑을 받는 것을 본다면 연애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관심은 여전한 모양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사랑은 '날것'일 때 더 자극적이다. 연애 예능이 진하디 진한 감정들의 향연을 내포하면서 멜로드라마의 장점을 흡수했다. 잘 만든 연애 예능이 멜로드라마보다 한 수 위에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실제 인물들의 꾸밈없는 대사와 감정선이 드라마 이상의 여운과 감성을 이끌어내면서 자연스럽게 수요는 반비례의 그래프를 그렸다.
멜로드라마를 보고 대리만족하는 이들은 이제 예능 속 더 자극적인 이야기에 만족하는 중이다. 결론적으로 멜로의 부흥을 다시 이끌어내려면 예능 못지않은 리얼함과 몰입도를 부각시켜야 한다. 정통 멜로에겐 꽤 어려운 숙제다. 장르적 틀을 깨고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작품이어야만 높아진 시청자들의 기준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