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대신 동맹 강화 택한 진보…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분기점

입력
2023.01.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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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외교에서 한미동맹으로 노선 이동 
이재명 지지자 중 47.4%가 '동맹 지지' 
"커진 북핵 능력, 동맹이 현실적 방어막"

편집자주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한미동맹이 시작됐다. 올해 동맹 70년을 맞아 한국일보는 신년기획으로 국민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와 인터넷 웹조사, 심층면접인 포커스그룹인터뷰(FGI)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한미동맹 강화'와 '자주·독자외교' 사이에서 팽팽하던 균형추가 동맹을 우선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건 2010년이다.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우리 해군 46명이 전사한 '천안함 피격 사건'(3월 26일)과 북한군이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포를 쏴 군인·민간인 4명이 숨진 '연평도 포격 도발'(11월 23일)이 동시에 발생한 해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두 사건으로 대북 감정이 나빠졌고, 북한이 도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안보 불안이 가중되면서 자연히 시선은 든든한 우군 미국에 쏠렸다. 미국을 이념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현실적으로 필요한 존재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이 언제라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반미감정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졌다.

한미동맹을 향한 진보의 몰락, 보수의 득세 현상은 최근 대선 참여 유권자 성향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일보·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신년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 응답자 중 47.4%가 '한미동맹 강화'를 지지했다. 반면, 자주외교를 선호한 응답자는 그 절반인 21.9%에 그쳤다. 심지어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한 응답자 중 48.1%가 한미동맹 강화를 선택했다. 진보진영에서도 한미동맹의 필요성만큼은 적극 인정하는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뽑은 응답자 중에는 81.3%가 동맹 노선을 지지했다.



진보층 중 53.8% "미국에 긍정적 감정"


진보진영에서는 여전히 '반미'가 대세인데 안보적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맹 강화를 찬성하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았다. 진보층 응답자에게 미국에 대한 감정을 물었더니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53.8%였다. 반면, 부정적 감정은 17.8%에 그쳤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한 것이다.

2010년 이후 진보진영 내에서 한미동맹 강화론이 급속히 힘을 받은 사실은 과거 조사와 비교해보면 더 또렷하다. 동아시아연구원 설문에서 2005년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속했던 열린우리당 지지자 중 26%만이 한미동맹 강화를 지지했다. 반면 자주외교 44%, 중립 31%로 이보다 선호도가 높았다. 10년 뒤인 2015년 같은 질문을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에게 물었더니 △동맹 강화 31% △자주외교 28% △중립 40% 순으로 집계돼 동맹이 자주를 근소한 차이로 앞질렀다.

한미동맹 강화 여론은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미 대화 국면이 조성되면서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 '결국 북한은 변하지 않겠구나' 하는 실망감이 커지면서 기댈 곳은 미국뿐이라는 믿음이 굳어졌다. 정 전문위원은 "다만 진보층 가운데 72.6%가 '대북제재보다 지원을 중심으로 한 대화정책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답해 현 정부의 강경일변도식 대북정책에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북한을 노골적으로 편들고, 이 틈을 타 북한이 공격 능력을 키우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한미동맹 강화 여론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 교수는 “북한이 지난해 9월 핵무력을 법제화하고 다양한 신형 미사일을 선보이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과연 우리 자체 미사일방어체제로 북한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확산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갈수록 고조되는 북한의 위협에 맞서려면 진보·보수의 진영논리에 상관없이 '한미동맹 강화'만큼은 의기투합해야 하는 공감대가 커졌다는 것이다.


유대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