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알아야 할 노년 30년 설계법

입력
2022.12.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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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 천하 유랑 장려한 고대 인도
수명 긴 현대사회 적용 어려워
여유 있게 물러나 자신을 즐겨야

고대 인도인들은 인생을 4단계(4주기)로 나눴다. 1단계는 학습기(學習期)로 공부하는 기간이다. 요즘으로 치면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에 해당한다. 2단계는 가주기(家住期)로 결혼을 해서 가업을 영위하며 자녀를 성장시키는 기간이다. 요즘의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려 자녀의 독립을 뒷받침해 주는 기간 정도라고 하겠다. 3단계는 임서기(林棲期)로 생업에서 은퇴해 가업을 자녀에게 물려준 뒤, 숲으로 들어가 자신을 돌아보며 명상하는 기간이다. 은퇴한 뒤의 세컨드하우스에서의 고즈넉한 삶 정도라고 하겠다. 마지막 4단계는 유행기(遊行期)로 천하를 유랑하며 집착 없는 수행을 하는 단계이다.

인도의 4단계 중 유행기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집시도 아니고 어떻게 연로한 상태에서 떠돌아다니며 유랑 생활을 한단 말인가? 사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당시 인도인들의 평균 수명이 채 50세가 안 됐기 때문이다. 즉 노년 개념이 오늘날과는 사뭇 다르다는 말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신사임당(1504∼1551)이 47세, 율곡 이이(1536∼1584)가 48세에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이분들이 요절했다는 말은 없다. 즉 이때까지만 해도 오십견을 모르고 죽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50세 이전이면 몸이 아플 수는 있지만, 80, 90대처럼 거동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인도는 무덥고 강우량이 많다. 이로 인해 주거의 필연성이 약하고 농산물이 풍부하다. 그래서 집시와 같은 유행 생활이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날 인도인의 4단계는 맞지 않다. 갑자기 장수로 내던져진 현대에는 그보다는 3단계가 적합하기 때문이다. 1단계는 30세 정도까지로 학습과 직장을 구하는 때다. 인도의 학습기와 일치한다. 2단계는 60∼70세까지 정도로 직장 생활을 통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고 분가시키는 기간이다. 우리나라의 평균 퇴직 연령은 2010년부터 꾸준히 49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로도 72세까지는 제2의 일을 하는 것으로 조사된다. 여기까지가 인도의 가주기에 해당한다.

마지막 3단계는 60∼70세부터 90∼100세까지인데, 자신을 되돌아보며 소확행을 즐기는 진정한 삶의 모색 기간이다. 즉 인도의 임서기와 유행기가 결합된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개인적으로 90세 이상을 살아야 하는 현대에는 '임서기 → 유행기'가 아닌 '유행기 → 임서기'가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 이 3단계 때는 취미로서의 공부와 여행 및 답사, 그리고 기도와 명상이 중요한 덕목으로 작용한다. 2단계까지가 치열한 삶의 기간이라면, 3단계에서는 여유 있게 물러나며 자신을 즐기는 평안과 덕스러움에 초점을 맞춰야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이 바로 '명상'과 '보람'이다.

매미가 6년 이상 땅속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을 금선탈각(金蟬脫殼)이라고 한다. 매미의 변화는 극단적인 새로움이다. 이제 현대의 우리 역시 매미처럼 만년의 변화가 필요하다. 노년의 30년은 더욱더 세심하고 치밀한 설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3단계 노쇠에 따른 축소만이 존재한다. 특히 엄청난 재산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면, 80대 중반부터는 자본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육체와 정신의 문제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마무리가 좋은 고종명(考終命)을 5복 중 하나로 평가했다. 그런데 어지간히 준비하지 않는다면, 최후의 30~40년은 자칫 감옥보다도 심한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체력관리와 영양 섭취, 그리고 명상은 필수적이다. 특히 정신이 무너지면 육체가 건강해도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명상의 준비는 3단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판단된다.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