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같았다.” 제63회 한국출판문화상 본심을 마친 심사위원이 한 말이다. 한 해 동안 우리 사회를 풍성하게 한 좋은 책을 모아 기리고 응원할 수 있어 기뻤다는 뜻이다. 올해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은 학술, 교양, 번역, 편집, 어린이ㆍ청소년 5개 부문에서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2종을 비롯해 6종이다.
본심은 콘클라베(교황 선출회의) 방식으로 이뤄졌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 합의’를 이룰 때까지 끝장 토론을 벌여 ‘올해의 책’을 꼽았다. 그 과정에서 심사위원 다수의 지지를 얻었지만 아쉽게 최종작으로는 선정되지 않은 책들을 소개한다. 이른바 ‘올해의 턱걸이상’이다.
학술 분야에서는 ‘대중서 못지않은’ 흥미로운 책들이 두루 발견됐다. ‘의회의 조레의, 당의 조레스, 노동자의 조레스’(마농지)가 대표적. 프랑스 사회주의 정치인 장 조레스의 파란만장한 활동을 조명하며 오늘날 정치란, 정치인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수십 년 동안 조레스를 연구한 노서경 작가의 결실이 녹아 있는 책. 프랑스 조레스학회의 회장인 질 캉다르가 직접 서문을 썼다.
‘냉전과 새마을’(창비) 역시 지적 쾌감을 선사하는 학술서. 박정희 정권이 펼친 ‘새마을 운동’의 기원을 일제가 만주에 농민을 강제 이주시켜 건설한 집단 부락에서 찾는다. 지역민들이 항일세력과 연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축한 ‘통제와 감시’ 체제는 새마을 운동 때도 이어진다. 이 ‘비인간적 공동체’를 성찰하고 ‘인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자는 저자의 주장에 울림이 있다.
교양 부문에서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은 ‘전라디언의 굴레’(생각의힘) 역시 독재 시대와 연결된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 기반인 대구ㆍ경북(TK)에 경제력을 몰아주며 호남을 저발전 지역으로 남겨둔다. 호남 출신은 산업화 시절 서울로 이주해 허드렛일을 도맡으며 하층 노동자 집단을 형성한다. 호남 출신 저자는 지금도 도처에 남아 있는 호남 차별 행위를 통렬히 고발한다.
교양서 ‘하이데거 극장’(한길사)은 교양 분야 심사 때 ‘깜짝 스타’였다. 다소 진입장벽이 높아 보이는 철학서, 그것도 난해하다고 알려진 하이데거의 삶과 연구에 관한 책인데 “책장을 열면 정신없이 빠져든다”는 평가가 나왔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하이데거를 접하고 싶은 독자에게 최고의 안내서가 되어줄 책이다.
번역 부문에서는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바다출판사)가 성실한 번역으로 호평을 얻었다. 과학 전문 번역가 신광복씨와 출판문화상은 구면, 2017년 그가 지은 그림책 ‘돌고 돌아 돌이야’(시공주니어)가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본심 후보에 올랐었다. 국내 최초로 프랑스 중세 무훈시를 번역한 ‘롤랑의 노래’(휴머니스트)는 심사위원으로부터 “독자로서 고마운 마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교보문고는 출판문화상 본심 후보작을 대상으로 토너먼트 방식의 독자 인기투표를 진행했다. 500여 명이 참여한 결과, 1, 2위는 올해 출판계 트렌드였던 ‘위로’ ‘공감’을 키워드로 한 책이 차지했다. 1위는 올해 화제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경험을 서정적으로 그렸다. “올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는 심사평을 얻었으나 다양한 책을 소개하려는 출판문화상 취지에 따라 수상작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2위를 차지한 ‘공감의 반경’(바다출판사)은 진화생물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을 넘나들며 진짜 공감이 무엇인지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혐오와 분열을 극복하려면 공감을 깊게 하기보다 반경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 3위에는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현암사)과 ‘나보코프 단편전집’(문학동네)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