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에서 일어났던 아픈 역사를 되짚어보는 논픽션이다.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왜 소중한지 작가는 수십 장의 펜화와 정제된 문장을 통해 알려준다. 가로 15cm 세로 20cm 정도 크기에 80쪽으로 된 작은 그림책 한 권에는 4ㆍ3 사건의 아픔과 당시 희생된 넋을 위로하려는 손길이 켜켜이 담겨 있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영화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고 실을 꼬는 작업을 하면서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는 제주 동광마을의 어르신, 다른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직접 조를 심어 농사를 짓고 그 조를 거두어 술을 빚고 술을 올려 제를 지내는 과정을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1948년 11월 15일의 첫 총소리 이후 156명이 이곳에서 무고한 목숨을 잃었다.
책은 6월 29일, 땅에 노랗고 조그만 씨를 뿌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드로잉북과 펜을 가지고 현장에서 일하며 이 작은 씨앗들이 자라나 열매를 맺고 제사상에 오르는 술이 될 때까지 정성이 쌓이는 순간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이것은 마치 한 인간이 태어나 세상에서 자신의 몫을 하게 되기까지 겪는 일과 비슷하다. 나아가 인류가 절절한 아픔과 과오를 바로잡아가며 역사를 바로 세우게 되는 과정과도 닮았다. 책은 제주 사람들의 삶과 우리 역사에 대한 거대한 유비인 셈이다.
펜화는 냉철하면서도 곡진하게 슬픔을 어루만진다. “살암시민 살아진다(살아있으면 살아가게 된다)”는 남은 자들의 말과 학살터마다 돌며 한 잔씩 술잔을 올리는 장면들이 길고 굳센 여운으로 남는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어렵지 않게 역사의 의미를 알려줄 수 있는 작품이다. 책 안에는 동명의 노래가 담겨 있어 종합적인 제의의 구성을 갖추었다. 김영화 작가가 첫 책부터 흔들림 없이 제주의 황혼을 닮은 색조로 그곳의 삶을 그림책에 담아내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되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