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찾은 경기 용인시 KT SAT 용인 위성관제센터. 보안 때문에 지도에도 정확한 위치가 나와 있지 않은 비밀스러운 이곳. 건물 안에는 수많은 모니터가 있는 상황실이 있었다.
대부분의 모니터에서는 KT SAT이 운영하는 통신 위성 상황을 관제하는 창이 떠 있었는데, 이 중 하나에 항구 사진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불과 몇 시간 전 A국가 B시 항구의 모습으로, 어선 수십 척이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이 항구는 불법 어선들의 집결지로 알려진 곳이다. 즉각 KT SAT이 현장 상황을 분석해 관련 정보를 해양경찰에 전달했다. 우리 해안에 접근하는 다른 나라 불법 어선의 경로를 미리 파악해 대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국내 유일 위성통신 사업자인 KT SAT은 우주 공간에서 위성이 찍은 이미지를 분석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스페이스 데이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직 국내서는 국방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쓰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주요 기업들이 중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이런 정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KT SAT이 보유한 인공위성 5기는 모두 통신 전용 위성이다. 스페이스 데이터 사업을 위해선 촬영 장비를 갖춘 지구 관측 위성이 필요하다. KT SAT은 지난해 5월 미국의 위성 영상 제공 기업 블랙스카이,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공간 정보 분석 기업 오비탈인사이트와 손잡고 스페이스 데이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고객사에게 요청받은 위치의 고해상도 위성 이미지와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간 정보를 준다.
이주환 KT SAT 신사업팀 팀장은 "1,600㎢(가로·세로 400㎞)까지의 넓은 면적을 위성 영상으로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며 "드론으로 이 정도 규모를 점검하려면 수개월, 항공 사진으로도 한 달 이상 걸리는 규모"라고 말했다. 위성을 통해 확보한 영상은 머신러닝, 딥러닝 등 AI 기술을 접목해 현장에서 좀 더 쓸모 있는 정보로 탈바꿈한다. 가령 AI가 차량이나 선박 사진을 수백 장 학습해 구체적으로 어떤 기종인지까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위성 영상 보안규정에 따라 위성 사업자가 배포·판매할 수 있는 해상도 기준은 4m였다. 이 규제는 2007년 아리랑 2호 발사 계기로 6m에서 4m로 완화된 이후 15년 동안 묶여 있었다. 이에 해외에서는 보다 고화질의 위성 영상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는 반면 국내는 흐릿한 영상을 볼 수밖에 없어 관련 산업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다 국무조정실이 위성영상 보안규제를 1.5m급으로 완화하기로 하면서 KT SAT이 새 산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산업군에서 위성 영상을 도입하고 있다. 해외 주요 증권사는 전 세계 유류 저장고를 촬영한 위성 사진을 투자의 중요 정보로 활용한다. 유류 저장고의 뚜껑 높이에 따라 저장량을 추정해 기름값을 미리 예상할 수 있다. 식품 회사는 미국이나 브라질 등에서 재배하고 있는 농작물의 상황을 위성 영상으로 파악해 시장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이 팀장은 "농사가 흉작일 경우 물량을 최대한 빨리 확보하고, 풍년일 경우 그 시기를 늦추는 식으로 투자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며 "원자재 수입에 수조 원을 쓰는 기업의 경우 결정적으로 활용가능한 데이터"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마켓츠앤마켓츠에 따르면, 위성 이미지 데이터 시장 규모는 2021년 약 59억 달러(약 7조5,000억 원)에서 2026년에는 167억 달러(약 21조 원)까지 300% 가까이 커질 전망이다.
현재 KT SAT은 해외 제휴사를 통해 확보한 영상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지만 올해 본격 시장 수요를 확인한 뒤 위성을 직접 띄우거나 유망 기업을 인수하는 식으로 스페이스 데이터 사업 규모를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 팀장은 "이미 45대의 안테나, 5대의 통신 위성을 운영한 국내 유일의 위성업체인 만큼 국내서 어느 기업도 우리보다 더 많은 노하우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며 "AI, 빅데이터 등 차세대 기술을 적용한 분석∙활용 분야에서 KT그룹 역량을 활용하여 글로벌 최고의 스페이스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