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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은 매일 새벽 총을 쏘러 다녔다. 주말과 공휴일을 빼고는 사격장 가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보통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섰기 때문에, 윤석은 혜경이 집에서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윤석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여덟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식탁 위에는 둘둘 말린 트레이닝 복과 파란색 바람막이 점퍼가 널브러져 있었다. 윤석은 점퍼를 집어 올렸다. 메케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흐린 날에는 냄새가 더 독하게 풍기는 기분이 들었다. 윤석은 환기를 시킬 요량으로 부엌 창문을 열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순식간에 집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곧 비가 쏟아질 모양이었다. 윤석은 창문 옆에 기대어 섰다. 산 너머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일정한 규칙 없이 꼬리를 길게 빼며 사라졌다. 빗나갔네. 윤석이 혼잣말했다.
국제사격장은 부부가 사는 아파트에서 마을버스로 일곱 정거장 거리에 위치했다. 아파트 뒤편 낮은 산 하나를 넘어가면 조금 더 높은 산이 나오는데, 그 중턱에 사격장이 자리해 있었다. 십이 년 전, 처음 국제 사격장을 짓기로 했던 때를 윤석은 기억했다. 그는 당시 시청 시설관리과 주무관으로 일했다. 인근 아파트 주민의 80퍼센트가 사격장 건립에 반대했다. 몇몇 주민들은 반대 의사를 행동으로 옮겼다. 고발 방송 프로그램에 제보하거나 도시 곳곳에 플래카드를 붙였다. 시청 직원이 밤중에 플래카드를 떼어내면, 다음 날 귀신같이 새로 제작된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새 플래카드는 전날 것보다 한층 거친 문구를 담고 있었다. 총을 쏘려거든 우리 먼저 쏘고 가라. 노란색과 붉은색 명조체로 쓰인 문구. 윤석은 그 문구가 옆집 아주머니나 동네 꼬마들의 입을 통해 면전에 쏟아지거나, 비로 변해 입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아파트 주민을 설득하는 일은 윤석의 몫이었다. 단지 윤석이 이 아파트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어려운 위치에 처했다는 사정은 누구도 헤아려주지 않았다. 아파트와 사격장의 거리는 애매했다. 총소리가 들릴 것 같기도, 아닐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은 애매한 사실에 흔들릴 틈이 없었다. 시장은 하루속히 공사를 시작하라고 국장과 과장을 닦달했고, 그들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실무자인 윤석에게 향했다. 윤석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공무원의 의무에만 충실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주민 회의에 참석해 아파트 사람들의 푸념을 묵묵히 들어주고, 주민 대표와 인근 행정 구역 통장에게 술을 샀다. 보상금 지급액을 결정하는 최종 회의에서는 플래카드 문구보다 한층 더 험한 말이 오갔다. 윤석은 참기 힘든 말을 모두 듣고 견뎠다. 자신이 아닌 시장을 향한 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맨몸으로 총알받이가 된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일 년간의 실랑이 끝에 보상금은 시에서 만족할 만큼의 수준으로 책정되었다. 윤석의 공이 컸다는 걸 조직원 모두가 인정했다. 그러나 막상 사격장이 완공되었을 때, 윤석은 시설관리과에 없었다. 그는 완공을 앞두고 경마장 관리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사에 운이 따르지 않았다. 부서 이동과 동시에 시설관리과에서 쌓아놓은 업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는 이제 온종일 총소리가 들리는 아파트 주민 중 한 사람으로만 남게 되었다.
윤석은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얹고 레버를 돌렸다. 먹다 남은 김치찌개에 허옇게 굳은 돼지기름이 떠 있었다. 샤워를 마친 혜경이 부엌으로 걸어왔다. 그녀의 맨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랫배에 길게 난 흉터에 윤석의 시선이 멈췄다. 혜경은 둘째 아들을 제왕절개로 낳았다. 육 년 만의 출산이라 경산모인데도 진통이 길었고, 자궁문이 열리지 않아 결국 응급수술을 해야 했다. 새벽 네 시. 주치의는 이미 퇴근한 뒤였다. 그 바람에 아이를 혼자 받아본 적 없는 레지던트가 수술을 집도했다. 레지던트는 서툰 솜씨로 혜경의 배에 길고 비뚜름한 수술 자국을 남겼다. 수술 자국은 성기게 감은 실밥 모양 그대로 아물었다. 재수 없었다고 쳐. 눈에 안 보이는 부위인데, 뭘. 윤석은 속상해하는 혜경을 달랬다.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 의료상의 과실은 그냥 넘어가는 게 병원과 환자 피차간 편할 거라 여겼다. 윤석은 발가벗은 혜경의 아랫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감았다 뜨길 반복했다. 마치 그런 행동이 칼자국을 없애줄 것처럼.
혜경은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를 챙겨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윤석은 냉장고에서 반찬통과 생수병을 꺼냈다. 김치찌개는 냄비째 식탁에 올렸다. 오래 끓인 탓에 바싹 졸아붙은 국물에서 짠 내가 훅 끼쳤다. 윤석은 수저 두 벌을 챙겨 식탁 위에 대충 벌여놓은 뒤, 자기 몫의 밥만 퍼서 자리에 앉았다. 식탁 구석에는 조간신문이 놓여 있었다. 윤석이 한 손으로 신문을 집었다. 윤석은 퇴직 후에도 눈 뜨면 종이 신문 읽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혜경은 그사이 옷을 챙겨 입고 부엌에 나타났다. 솥에 남은 밥을 몽땅 긁어서 공기에 덜어낸 뒤, 윤석의 맞은편에 앉아서 물었다.
“오늘도 스타벅스 갈 거야?”
“응. 밥 먹고.”
혜경이 입에 넣은 밥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 사이로 손바닥 크기만 한 멍이 보였다. 사격장에 다닌 뒤부터 혜경의 왼쪽 쇄골에는 멍이 지워질 날이 없었다.
“몸 좀 사리지 그래?”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떠먹는 혜경의 정수리를 향해 윤석이 쏘아붙였다. 혜경도 내년이면 예순 살이었다. 환갑은 의미 없는 숫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윤석에겐 그랬다. 환갑을 축하하는 건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을 치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닥칠 일을 더욱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젊었을 때는 당연히 보장되리라 여겼던 건강하고 안녕한 삶. 나이가 들면 각별히 유의하지 않고서는 그런 삶을 지킬 도리가 없다는 걸 퇴직 후에야 깨달았다.
“언제 내 몸에 그렇게 신경 썼다고. 집에 오는 길에 타이레놀이나 사 와.”
혜경이 식탁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집에 없어?”
“없어.”
“한 알도?”
혜경이 더는 대꾸하기 귀찮다는 듯 말없이 창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혜경은 요즘 따라 창고 방에 자주 들어갔고, 한 번 들어가면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물건을 정리한다는데, 별로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낡은 옷가지와 이불, 서류 더미, 먼지를 덮어쓴 책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놓여있었다. 윤석은 혜경이 무얼 하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 싱크대 바가지에 그릇을 담가놓은 뒤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식탁에 놓인 조간신문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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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매장은 조용했다. 정주못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이곳에는 스타벅스 정주못점이라는 상호가 붙어있었다. 윤석은 매장 내에서 커피를 마시는 유일한 손님이었다. 출근길 손님 대부분이 테이크아웃이나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를 이용했다. 순서를 기다리는 차들이 차선 하나를 완전히 점령한 상태였다.
윤석이 아침마다 스타벅스를 찾기 시작한 건 올봄부터였다. 그는 지난해 말 정년퇴직 했다. 퇴직 후 두 달은 그럭저럭 좋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신문을 정독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침대에서 텔레비전으로 먹방 프로그램을 보면서 뒹굴었다.
여유가 생기니 평소에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띄었다. 찬장에 진열된 찻잔에서 묵은 커피 자국을 발견했다. 아침 열 시 정각에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카트를 몰고 단지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자취를 감추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세탁, 세탁을 외치는 세탁소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퇴직하기 전부터 늘 그 자리에 있던 일상이었지만, 윤석에게는 모두 새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새로움은 불과 석 달 만에 지루함으로 바뀌었다. 더는 윤석에게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고, 일어나면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아침마다 스타벅스에 다닌 뒤부터는 그나마 하루가 빨리 갔다.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고 나면, 밤에 잠도 잘 왔다.
혜경은 윤석보다 규칙적으로 생활했다. 잠도 잘 드는 편이었다. 수면제 덕이었다. 십 년간 꾸준히 복용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적응한 모양이었다. 처음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을 때, 혜경은 약 기운 탓에 낮에도 잠에 취해있었다. 잠에서 깨면 두통을 호소했다. 두통을 핑계로 요리나 운전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실은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에 가까웠다. 칼을 쥐면 손을 자를 것 같고,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가 서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둘째 아들이 죽고 난 후, 혜경은 오랫동안 자주, 많이 울었다. 물만 먹는데 저렇게 많은 눈물이 흐를 수 있다는 게 윤석으로선 놀라울 지경이었다.
둘째 아들의 시신은 정주못 산책로 북쪽 2.7km 지점 갈대 더미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전날 내린 폭우 탓에 수면이 10cm가량 높아진 상태였다. 아들의 몸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물에 퉁퉁 불어, 사람이 아닌 물체처럼 보였다. 바다에 떠 있는 낡고 오래된 스티로폼 부표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입고 있던 청바지와 노란색 맨투맨 덕에 겨우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윤석은 시신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손을 대면 살이 두부처럼 부서질까 봐 무서웠다. 윤석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슬프기보다 두려웠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실종된 날에는 폭우가 내렸다.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예고도 없이 비가 쏟아졌다. 비는 한 시간 정도 거세게 퍼붓다가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스콜이었다. 지금이야 흔한 일이지만, 십이 년 전만 해도 동남아에서나 볼 수 있는 드문 기후 현상이었다. 그 시각 윤석은 사격장 건립 회의 때문에 주민센터에 있었다. 회의 시작 전 창밖을 내다보면서, 참 이상한 날씨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회의 시간 동안 아내가 보낸 문자와 부재중 전화 알림을 확인하고도 윤석은 답하지 않았다.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괜히 호들갑을 떤다고 여겼다. 주민 센터는 난장판이었다. 보상금액을 두고 고성이 오갔다. 주민 한 사람이 급기야 사무관의 멱살을 잡았다. 윤석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잠재우는 데에 급급해, 서류 가방에 넣어 둔 휴대전화를 꺼내 볼 틈이 없었다.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때, 혜경은 소파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양손에 꼭 붙든 채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첫째의 수학 숙제를 확인하는 동안, 둘째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나간 모양이라고 했다. 온 동네를 다 뒤졌지만, 아이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혜경의 젖은 옷과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빗물은 금세 바닥에 흥건히 고였다.
윤석은 혼자 있을 때 가끔 소리 내어 둘째 아들의 이름을 발음해 보았다. 민준. 민준이. 민준아. 아들의 이름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생명체 같았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면 아득히 멀어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가까이 다가왔다. 이름을 제외하고는 둘째 아들과 관련된 그 무엇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책가방, 연필, 교과서, 큐브, 보드게임, 애착 배게, 잠옷과 이불까지 아들의 체취가 묻은 물건은 모조리 상자에 담아 버렸다. 그러나 마음대로 버릴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정주못이나 지금 사는 집이 그랬다. 민준이 죽은 뒤 집을 팔고 이사할 생각이었지만, 첫째 아들 민수가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민수는 동생의 죽음으로 침잠해 있는 가족 중 유일하게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죽은 동생보다 살아있는 자신을 위해달라고 따졌고, 부부는 민수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다.
지옥 같았던 몇 년이 흘렀다. 부부는 서서히 민준의 죽음을 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들의 생일과 기일을 챙겼고, 함께 나눴던 추억을 이야기했다. 슬픔을 드러냄으로써 죽음을 이겨내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끄집어내기 힘든 부분도 존재했다. 부부는 사고 당일에 있었던 일에 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아이를 지킬 수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철저히 함구했다. 대신 각자 마음속으로만 그 가능성을 집요하게 곱씹었다.
휴대전화 사 줄걸. 혜경은 그 말을 몇 년 동안 반복했다. 전화기를 가졌다고 물에 빠진 아이와 연락되는 게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윤석은 그 말에 자신을 향한 원망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았다. 전화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락이 두절된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빗속을 헤매는 동안 혜경에게 자신이 간절히 필요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에겐 차가 있으니 적어도 혜경보다 더 멀리, 어쩌면 정주못까지 민준을 찾으러 갈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윤석을 비롯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하필 민준이 정주못에 간 날 폭우가 내릴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윤석이 자주 하는 말처럼,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
윤석은 혜경의 분노가 자신을 향해있다는 게 몹시 억울했지만, 모르는 척했다. 혜경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뒤 갈라선 부부가 많다고 들었다. 그는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부부는 둘만 남아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십이 년을 버텨냈다. 윤석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야근을 핑계 삼아 혜경이 잠들 때쯤 집으로 돌아왔다. 혜경은 침대 위에 모로 누워 잠든 척했다. 민수는 독서실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윤석은 거실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텔레비전으로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시청했다.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는 방식은 가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갈등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혜경의 분노는 여전히 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사실은 부부가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자명해졌다. 혜경은 여전히 다량의 타이레놀과 수면제를 삼켰다. 윤석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으며, 부쩍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짜증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분갈이, 세탁물 맡기기, 찬장 청소까지 해봤지만, 혜경은 자신의 호의에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차라리 없는 사람 셈 치는 게 낫다는 듯 굴었다.
윤석은 한 손으로 세이렌 마크가 흐릿해진 잔을 들고, 다른 손으로 신문을 집었다. 경제면, 정치면을 넘기면서 습관처럼 기사 타이틀만 읽어 내려갔다. 지역면에 이르렀을 때, 윤석은 돌연 신문을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
전 시장 A의 실종 소식은 지역면 하단에 실려 있었다. A는 사흘 전 평소처럼 양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 뒤 지금까지 연락이 두절되었다. 기사에는 이틀이 지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수상쩍게 여긴 그의 아내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고 쓰여 있었다. 하단에는 정주못 인근 고급주택가 CCTV에 찍힌 A의 뒷모습 사진이 실렸다. 윤석은 신문을 눈에 가까이 대었다가 멀찍이 떨어뜨리기를 반복했다. 흐릿한 사진 속 인물이 A인지 맨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었다.
윤석은 A를 잘 알았다. A는 인구가 십만 명 남짓한 이 도시에 무리하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유치한 장본인이었다. 사격장 건립은 A의 선거 공약이었다. 윤석은 혜경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이 무리한 업무에 내몰린 이유를 곱씹었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조직에 대한 허물없는 충성심은 물론이고 윗선에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갔다. 더 크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했다.
윤석은 타인에게 눈을 돌렸다. 동료, 팀장, 과장, 국장을 떠올렸지만, 그들 역시 윤석처럼 무리한 과업에 매달린 일개 직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료들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때, 사격장 건립 당시의 불만을 꺼내곤 했다. 한동안 입을 모아 시장을 비난하는 걸로 쉬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 주민들에게 받은 비난에 대해 책임을 더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고맙게도 윤석 앞에서는 말을 삼갔다. 자신의 기분을 살펴주는 것만으로도 윤석은 배려 받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A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일개 직원들의 불만에 꿈쩍할 A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모두가 A를 욕하는 건지도 몰랐다. 멀어서 닿지 않는 표적을 향해 마구 화살을 쏘는 것과 비슷했다.
윤석 역시 한동안 A를 향한 적개심으로 살아갔다. 동료들의 단순한 비난과는 달랐다. 마음이 후련해지는 종류가 아닌, 날이 선 분노에 가까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동료 중 누구도 그 일로 윤석보다 큰 대가를 치른 사람은 없었다. 윤석은 시시때때로 A가 재선 공천에서 탈락하길 빌었다.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불면서도, 보름달을 보면서도 내심 그의 불행을 기원했다. 바람이 이루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A는 사격장 건립 업적이 무색하게, 곧 이어진 지역선거 공천과 국회의원 공천에서 줄줄이 탈락했다. 그의 정치 공백은 점점 길어졌다. A가 완전히 야인이 되었을 때, 윤석은 모처럼 즐거운 기분을 만끽했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절로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 막상 A가 오랫동안 힘을 회복하지 못하자, 윤석의 기쁨은 서서히 식었고 마침내 그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윤석은 A의 실종 기사를 두 번 정독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문을 나섰을 때도 윤석의 머릿속에는 계속 정주못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스타벅스 맞은편으로 15분만 걸어가면 정주못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정주못도 옛날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당선된 구청장은 정주못을 단시간에 지역 명소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둘레가 4km 정도 되는 못 주변에 노천카페도 생기고 펜스나 벤치도 곳곳에 설치되었으며, 자전거 전용 트랙도 생겼다고 했다. 부부는 민준이 죽은 후 한 번도 정주못 근처에 가지 않았다. 작은 도시에서 특정 장소를 피해 다니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선뜻 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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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이 집에 돌아왔을 때, 혜경은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묽은 커피에서 보리차 맛이 났다. 윤석은 신문을 식탁 위에 던지듯 올려놓은 뒤, 설거지 건조대에서 잔을 끄집어냈다.
“타이레놀은?”
윤석은 혜경의 물음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잊어버린 게 틀림없었다. 혜경은 피식 웃음이 났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윤석은 가족의 부탁을 가장 먼저 미루거나 잊었다. 요즘 들어 자신을 도와준답시고 찬장 정리나 분갈이하는 꼴이 보기 싫었다. 정작 설거지나 빨래 같이 중요한 일은 손도 대지 않으면서 생색만 내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밀었다. 온종일 붙어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차라리 퇴직 전이 나았다. 집안일을 도와준답시고 부산떠는 윤석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묻고 싶어졌다. 왜 필요할 때는 곁에 없었는지.
혜경은 윤석이 야근을 핑계 삼아 사무실에서 대충 시간을 때운다는 걸 알았다. 홀로 침대에 누워있을 때면, 윤석이 없다는 사실이 편하면서도 슬펐다. 차라리 죽일 듯 싸우는 게 낫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싸우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운이 빠졌다. 윤석과 함께 민준을 찾으러 다녔던들 결과가 달라졌을까. 윤석에 대한 분노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윤석이 있었더라면 사고를 막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혜경은 이제 그런 가능성을 곱씹는데 진력이 났다. 가능성은 희망 없이 분노만 일으켰다. 그러다가도 막상 윤석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생각이 달라졌다. 화가 났다. 아직 분노를 거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만 거듭 확인할 뿐이었다.
혜경은 옷장 안에서 여름내 쓰던 가방 세 개를 꺼냈다. 가방을 뒤지면 타이레놀 한 알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두 번째 가방에서 먹다 남은 약 한 판이 발견되었다. 약을 두 알이나 삼켰지만,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윤석은 타이레놀 대신 신문을 내밀었다. 누군가의 실종 기사였다. 혜경은 한 손으로 신문을 끌어당기면서 다른 손으로는 돋보기를 찾기 위해 식탁 구석을 더듬거렸다.
“누구야?”
“A. 전 시장.”
혜경은 짧은 기사를 한 글자씩 소리 내어 읽다가 돋보기를 벗어던졌다.
“가출이야, 가출. 웬 여자랑 놀다가 제 발로 들어올 거야. 그게 어디 한두 번인 줄 알아.”
“그걸 어떻게 알아?”
“그 사람 와이프 민수 친구 엄마잖아. 알면서.”
“요즘도 연락해?”
“아니. 연락 안 한 지 꽤 됐어.”
“그 정도 사이인데 남편이 가출하는 것도 알아? 난 같은 건물에서 일했는데 처음 듣는 말이구먼.”
“A 와이프 입이 아니라 다른 엄마 입으로 들은 거지.”
혜경은 머릿속으로 손가락을 관통시킬 것처럼 세게 관자놀이를 눌렀다. 민수를 위해서 꾸역꾸역 모임에 참석해 다른 학부모들과 친분을 쌓았다. 자식을 잃고도 웃는 여자라는 뒷말이 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윤석이 매일같이 출근하는 것처럼 자신도 돌을 씹어 삼키는 기분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혜경의 노력을 윤석이 알 리 없었다.
윤석이 신문을 네 등분으로 접었다. CCTV 사진이 반으로 접혔다. 사진 속 A의 뒷모습도 반 토막 났다. 윤석이 방으로 들어가려는 혜경의 등에 대고 물었다.
“만약에 말이야. 내가 이 사람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어떨 것 같아?”
“어떻긴. 찾아야지.”
“찾으면?”
“글쎄. 총으로 쏴버릴 거야.”
혜경은 젖은 손을 뻗어 접힌 신문을 집었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쇄골이 쓰라렸지만, 통증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A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망설이다가 그만두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윤석이 퇴직한 직후였다. 그때 A의 아내는 혜경에게 사격을 배운다고 말했다.
A의 아내는 자신보다 두 살 많은 혜경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슴없이 언니라 불렀다. 남편의 공천 탈락 이후 극도로 외출을 삼갔지만, 혜경과 둘이서 만나는 것까지 거절하지는 않았다. 엄마들은 A의 아내가 없는 동안 그녀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로 A와 관계된 일이었다. A가 밖으로 나돌기 때문에 아내가 아들의 학업에 목을 맨다는 이야기. 성이 다른 열 살짜리 여자아이 하나를 집에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 혜경은 소문을 쉽게 믿는 편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믿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소문의 진위가 궁금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A의 아내와 얼굴을 마주하면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A의 아내는 항상 기운이 없었다. 아들이 원하던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눈에서 지난 십 년간 찾아볼 수 없었던 생기가 돌았다.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을 품은 눈빛이었다.
“언니. 총 쏴본 적 있어요?”
“총?”
“총을 쏴 봐요.”
A의 아내가 혜경 쪽으로 몸을 바싹 붙인 채 나지막이 속삭였다.
“언니는 죽이고 싶은 사람 없어요?”
혜경이 화들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A의 아내는 혜경과 눈을 똑바로 맞춘 채 깔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의 말이 떠오른 건 윤석이 퇴직한 후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혜경은 새벽 첫차를 타고 사격장을 찾았다. 마을버스는 낮은 산을 넘은 뒤,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산에 위치한 사격장까지 혜경을 실어 날랐다. 승객은 혜경 한 사람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혜경은 귀를 베는 듯 찬바람과 날카로운 총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총소리를 가까이에서 듣는 건 처음이었다. 혜경은 국제사격장 현판이 달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체육복 차림의 직원 하나가 프런트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제가 총을 좀 쏘고 싶은데요.”
직원이 슬그머니 눈을 뜨더니 빨간 볼펜으로 강좌 시간표 여기저기에 동그라미를 쳤다. 건물 밖 잔디밭 쪽에서 탕, 하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들리는 저 소리는요?”
그가 클레이 사격이라고 쓰여 있는 강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걸로 등록할게요.”
혜경은 한 번도 쓰지 않은 직불카드를 그에게 내밀었다. 카드 대금은 사격장 건설 보상금이 들어 있는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총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본체에서 쇳내가 짙게 풍겼다. 방탄복을 입었지만, 긴장 때문에 몸이 뻣뻣해졌다. 실탄을 장전한 총구가 언제든 사람을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몸에 소름이 돋았다.
강사가 가르쳐 주는 대로 어깨에 개머리판을 대고 총구를 표적에 겨눴다. 방아쇠를 당기자 개머리판이 그녀의 왼쪽 어깨에 부딪히며,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강사가 가르쳐준 대로 레버를 당기니 탄피가 옆으로 튕겨 나왔다. 탄피에서 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대 주위에는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귀마개가 자꾸만 이마 쪽으로 흘러내려서 시야를 가렸다. 산탄총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무거워서 가만히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다섯 발을 쏘고 나자 혜경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되었다.
혜경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화약 냄새가 신경 쓰여, 옷 여기저기에 코를 가져다 대고 연신 킁킁거렸다. 윤석이 잠옷 상의를 걷어 올리고 거실로 나왔다.
“어디서 뭘 하고 온 거야?”
“총 쐈어.”
“뭐?”
“총 쐈다고.”
“아무나 된다고?”
“되더라고.”
“몇 발이나 맞췄어?”
“한 발. 첫 한 발이었지. 운이 좋았어.”
혜경은 표적이 공중에서 흩어질 때를 떠올렸다. 총알이 표적에 맞을 때의 둔탁한 감각이 여전히 손에 만져졌다.
샤워를 하고 난 뒤 혜경은 휴대전화로 에어코깅건을 검색했다. 집에서 자세 연습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강사가 실물과 유사한 레플리카 모델을 추천해주었다. 탄알을 장전하지 않으면 위험할 일이 없고, 방아쇠를 당겨도 소리가 크지 않다고 했다. 총이란 게 한번 손맛을 보면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니까요. 강사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
이틀 뒤, 인터넷으로 주문한 총은 길쭉한 상자에 포장되어 택배로 도착했다. 혜경은 창고 방, 한때는 민준이 쓰던 방에 들어가 상자를 뜯었다. 스티로폼 충전제 속에 묻힌 묵직한 방아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충전제를 걷어낸 뒤 총을 꺼냈다. 총 아래에는 플라스틱 탄알이 비닐로 여러 겹 포장되어 있었다. 혜경은 개머리판을 겨드랑이에 꼈다. 사격장에서 쓰는 것보다 가벼웠지만 꽤 그럴싸했다. 총은 가늠자가 고정되어 있고 발사 후 레버를 젖히면 탄피가 옆으로 튀어나오는 방식이었다. 혜경은 플라스틱 탄알을 장전했다. 커튼 쪽을 향해 총을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기려다가 멈추었다. 문밖에서 윤석의 기척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플라스틱 탄알이라고 해도 윤석이 있는 곳에서 총을 들고 싶지 않았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혜경은 종이 박스에 총을 다시 집어넣어 책장 가장 위 칸에 올려놓은 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
A의 실종 기사가 난 다음 날. 윤석은 아침 다섯 시 반에 눈을 떴다. 퇴직 후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건 처음이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빗소리가 요란했다. 혜경은 집에 없었다. 식탁에는 조간신문이 비닐에 쌓인 채 그대로 올려져 있었다. 혜경이 사격장에 가기 전에 들여놓은 것 같았다. 윤석이 신문을 집어 올리자 비닐에 묻은 빗물이 식탁 위에 후드득 떨어졌다.
A의 기사는 하루 사이 사회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제 오전에 정주못 근처에서 A를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타났다. 남자 하나가 양복을 입고 여기에 풍덩 빠졌다니까요. 그의 진술에 따라 경찰이 어제저녁부터 정주못 지압길과 갈대밭을 중심으로 수색에 나섰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서 자살을 단정할 수는 없었다. 이주 전 A가 혼외자로 추정되는 여성과 연락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그 여성은 A에게서 심적 동요의 흔적을 느끼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 사람이 밥을 먹자고 했어요. 이 근처 제일 맛있는 분식집에서 우동을 시켜 소주를 마시고 싶다고 했어요. 그 여성은 A가 가끔 한 번씩 전화로 실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끊곤 한다고 말했다. A가 내시경을 받으러 내과에 자주 들른다는 수행비서의 증언도 있었다. 위가 좋지 않다고 하셨거든요. 궤양도 있고, 천공도 생겼다고 하셨어요. 맨날 내시경을 받았어요. 병원은 제가 예약했죠. 예약이 안 되면요? 때리죠. 막 발로 차기도 하고. 재떨이나 커피잔을 던지기도 하고. 검사를 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잠을 못 자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수면 유도 주사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말고요. 기사에 실린 내용만 보면 A는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패기가 넘쳤고, 그 못지않게 패악도 부렸다.
윤석은 신문에 인쇄된 정주못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지압길 주변으로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얼기설기 처져 있었다. 사람 키만 한 갈대가 폴리스 라인 안으로 삐죽삐죽 머리를 들이밀었다. 후련하거나 고소하지는 않았다. 대신 견딜 수 없이 허전했다.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지탱해주던 튼튼한 끈이 갑자기 툭 끊어진 기분이었다. 민준이 보고 싶었다. 윤석은 민준이라는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목구멍이 틀어 막힌 것처럼 소리는 나지 않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신문을 내려놓고 커피 메이커 전원을 켰다. 물과 원두를 채우고 필터를 끼운 뒤, 창문 쪽으로 갔다. 빗발이 거셌다. 빗방울은 창틀과 창문에 부딪혀 요란스럽게 튀어 올랐다. 산은 비와 안개에 가려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커피 메이커가 끅끅 소리를 내며 커피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윤석은 머그잔에 커피가 넘칠 듯 가득 부었다. 커피잔을 들고 거실 창문을 조금 연 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총소리가 들려왔다. 길게 꼬리를 빼면서 사라지는 총소리는 탄환이 표적에 빗나갔을 때 나는 소리라고 혜경이 말한 적 있었다. 빗나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윤석의 물음에 혜경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멈출 곳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겠지, 라고 혼자 중얼거릴 뿐이었다.
집에 돌아온 혜경은 화장실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비에 젖은 바람막이를 식탁에 걸쳐놓은 뒤, 수건으로 머리에 묻은 빗물을 털었다. 그리곤 설거지 건조대에서 마른 잔을 꺼내 커피를 부었다. 커피가 넘칠 듯 위태롭게 찰랑거렸다.
“A는? 찾았대?”
혜경이 눈을 신문에 고정하고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아니.”
“그러면?”
“알 수 없지.”
둘은 잠시 말을 잃었다. 거실엔 부부가 번갈아 커피를 들이켜는 소리만 가득했다.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둘 중 누구도 창문을 닫지 않았다. 둘은 각자 생각에 잠겼다. 윤석이 마침내 감은 눈을 뜨고 혜경을 쳐다보았다.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많았나 봐.”
“사람이 꼭 이유가 있어서 죽는 건 아니잖아.”
윤석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곧바로 의문이 생겼다. 아무런 이유 없이도 사람은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말. 그 말을 윤석은 이해하지 못했다. 죽음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있어야 했다. 윤석은 빈 잔 속을 들여다보며 혼잣말하듯 물었다.
“죽었을까.”
“아닐 거야.”
“그렇겠지?”
“당신 어째 죽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런 건 아니고.”
윤석은 젖은 커피 필터를 휴지통에 버리고, 기계에 새 필터와 원두를 넣었다. 물도 채워 넣었다. 전원을 켠 지 30초도 지나지 않아 커피메이커에서 꺽꺽 소리가 들려왔다.
“딸이라는 여자 말이야. 좀 이상하지 않아?”
윤석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혜경에게 물었다. 혜경은 빈 잔을 윤석에게 내밀었다. 윤석은 방금 추출된 커피를 혜경의 잔에 부어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조심해.”
“뭘?”
“커피.”
커피에서 하얗게 김이 올라왔다. 윤석은 혜경의 옆자리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이 여자, 아무렇지도 않잖아. 아버지가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버지 노릇도 못 했는데 뭘.”
“아버지 노릇? 대체 그게 뭔데?”
윤석이 따지듯 물었으나 혜경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윤석을 빤히 쳐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윤석은 커피잔을 들고 혜경을 쫓아갔다. 혜경이 생각하는 아버지 노릇이 무엇인지 이번엔 꼭 따지고 싶었다. 윤석은 노크도 하지 않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혜경이 화들짝 놀라 뒤로 돌아섰다. 에어건 총구가 윤석 쪽으로 향했다. 탕, 하고 짧은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플라스틱 탄알이 커피잔을 든 윤석의 손을 향해 날아갔다. 윤석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커피잔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나버렸다. 혜경이 총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뛰어갔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낸 뒤 비닐에 넣었다. 총알을 맞은 윤석의 손가락 부위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혜경은 얼음주머니를 윤석의 손가락 쪽에 가져다 댔다. 통증 때문에 윤석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괜찮아?”
“아니.”
“방아쇠 안 당겼어.”
“방아쇠도 안 당겼는데 총알이 튀어나오는 게 말이 돼? 그 말을 믿으라고?”
“모형이잖아.”
“진짜 총이라도 쐈겠지. 당신. 나 쏘고 싶은 거 아니었어? 잘됐네. 그래. 쏴보니까 기분이 어때?”
“실수였어.”
“웃기시네.”
윤석이 미친 사람처럼 욕지기를 쏟아냈다. 윤석 옆에 굳은 듯 서 있던 혜경이 갑자기 주저앉더니 꺽꺽 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뜨렸다.
“끔찍해.”
“내가 화를 내서? 아니면 소리를 질러서?”
“아니. 당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거. 그게 너무 끔찍해.”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는지, 윤석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부엌에서 행주 두 개를 가지고 방으로 돌아와 깨진 잔 조각을 치운 뒤, 바닥에 쏟아진 커피를 닦아냈다. 총알에 맞은 손가락이 화끈거렸다. 혜경은 계속 울기만 했다. 우는 혜경을 보고 있노라니, 윤석도 같이 울고 싶어졌다. 윤석은 걸레질을 하다 말고 혜경 옆에 주저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소리 내 울었다. 소리 내어 운 게 얼마 만인지 알 수 없었다. 서로에게 왜 우느냐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
다음 날 아침. 혜경은 사격장에 가지 않았다. 윤석이 눈을 떴을 때, 혜경은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 침수가 우려되니 차를 단지 밖으로 옮겨달라는 아파트 안내 방송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윤석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높은 지대에서 아파트 쪽을 향해 흙탕물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거센 빗발을 이겨내지 못해 우산을 비스듬히 들고 물살을 거슬러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갔다.
윤석은 침대에서 자는 혜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일 년 사이 많이 늙었다. 머리가 빠져서 두피가 훤히 드러났고, 웃지 않는데도 눈가와 볼에 살이 처졌다. 자는 혜경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혜경은 단 한 번도 늦잠을 자는 법이 없었다. 적어도 민준이 죽은 후부터는 그랬다. 혜경은 가족 중 누구보다 긴 시간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었다.
총알에 맞은 손가락에는 시퍼런 멍이 생겼지만, 붓기는 없었다.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은 것 같았다. 옷장에서 반바지와 반소매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양말은 신지 않았다. 그는 정주못에 갈 생각이었다.
앞으로 걸을 때마다 비가 온몸에 들이쳤다. 추위에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우산은 쓸모가 없었다. 크록스 사이로 흙탕물이 들어차서, 걸을 때마다 자꾸만 벗겨지려 했다. 그는 오로지 앞으로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정주못에 다다랐을 때, 윤석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몽땅 젖어있었다. 빗물에 시야가 가려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정주못 앞 6차선 도로는 이미 차량 진입이 통제되었다. 도로 위에는 바리케이드가 듬성듬성 세워져 있었다. 차는 못 빠져나가도 사람이 드나들기에는 충분한 간격이었다. 윤석은 바리케이드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못에 고인 물이 순식간에 불어서 벤치 다리까지 차올랐다. 윤석은 지대가 높은 갈대밭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노란색 폴리스라인은 비를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한쪽 다리로 폴리스라인을 넘어갔다. 진흙 때문에 발이 미끄러졌다. 윤석은 사고 현장 한가운데 섰다. 그의 손에는 우산이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부터 우산을 쓰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윤석은 눈을 부릅뜨고 정주못을 노려보았다. 물에 불은 민준의 시신이 떠올랐다. 시신에 꼭 달라붙어서 오열하던 혜경의 모습도 떠올랐다. 마지막으로는 혜경의 문자를 보고도 휴대 전화를 덮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윤석은 혜경에게 답신을 보낼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었으면 전화 한 통 넣는 건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대신, 할 수 없었다고 믿어왔다. 그 믿음이 지난 십이 년간 윤석을 지켜주었다. 윤석을 버티게 한 건 A가 아니었다. 윤석은 얼굴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계속해서 닦아냈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솟구쳤다. 그런 자신의 마음에 지고 싶지 않아서, 윤석은 더욱더 맹렬한 눈빛으로 불어나는 흙탕물을 노려보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혜경은 식탁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커피 냄새가 났다. 그는 현관 옆 화장실로 들어가서 몸을 씻었다. 온몸이 빗물에 불어있었고, 오한 때문에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턱이 떨렸다.
샤워를 마친 그는 기운이 쏙 빠졌다. 혜경이 윤석에게 커피를 건넸다. 따뜻한 커피가 몸에 들어가자 졸음이 몰려왔다. 혜경은 오늘도 A의 실종 기사를 읽는 중이었다. 윤석은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전날 먹다 남긴 청국장이 냄비 안에서 끓기 시작했다.
“다른 소식이 있어?”
이제 더는 A의 소식에 관심 없었다. 그래도 윤석은 A에 관해 물었다. 자신이 아닌 혜경을 위해서, 그보다는 둘 사이에 버티고 있는 침묵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아니, 별로.”
혜경이 의자에서 일어나 윤석 쪽으로 향했다. 가스레인지 불꽃이 붉은색을 띠었다. 혜경은 입으로 후후 가스 불을 불었다. 열 번도 넘게 숨을 불어넣고서야 불꽃이 푸른색을 띠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좀 어때?”
“견딜 만해.”
혜경은 윤석에게 아침부터 어딜 다녀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어쩌다가 홀딱 젖어서 돌아왔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대신 둘은 마주 앉아 졸아붙은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었다. 비는 늦은 밤까지 그치지 않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침수되었다.
전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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