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되지 않는 '선천적 슬픔', 그것들이 있어 펜을 듭니다" [시 당선소감]

입력
2023.01.02 04:30
시 부문 당선자 이예진

글을 쓰면서 이 순간이 오길 기대했는데, 막상 때가 되니 어떤 말도 서툴고 어색한 것 같습니다.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고민한 지 수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한글날에 태어났으며 돌잡이로는 연필을 잡았습니다. 그게 제가 시를 쓰는 이유가 될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지웠다 쓴 문장들이 쌓여서 집을 세우고 가족을 만들고 사람이 되는 과정은 즐겁기도 괴롭기도 했습니다. 여러 사건들이 있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버둥대는 저와, 우리가 있었습니다.

나의 언니들 중 한 명은 저를 선천적 슬픔이라고 부릅니다. 아직도 몸 안에 소화되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펜을 잡는 것 같습니다. 하루는 꿈에서도 시를 썼습니다. 일어나서 그 문장이 날아갈까 봐 비몽사몽 옮겼습니다. 그날 카페에 앉아 있는데 저만 멈춰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문학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언젠가 현실에 잡아먹힐까 봐 두려웠습니다.

혼자서만 이 자리까지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될 때까지 도와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오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이름들이 생각나서 하나씩 호명해 봅니다. 저를 위해 적금도 들자고 약속한 두 언니, 재진과 미도, 김박예란과 친구들(다래 선주 길란) 지윤 나은 서영 유경 수많은 언니들이 있어서 지금의 선천적 슬픔을 견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쓰던 태의와 산하 세실, 든든한 나의 꼬맹이들 다윤 유현 현경 나연 채영 수은 그리고 니은 받침이 즐거운 여자들 은진 세륜 윤진 민선 은영 우리 오래도록 쓰자, 애정하는 호짜 식구들, 9월의 예버덩 식구들, 대학원 친구들과 9기 콩자반 아이들, 도운과 현영 하령 덕분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찬, 내가 너의 방공호가 되어줄게.

영원한 애제자가 되고 싶은 영미와 하린, 어렸던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조차도 저를 믿지 못할 때 끝까지 확신을 준 동생 현정이와 하정이. 너희들의 언니라서 기뻐, 계속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우숙과 재현에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박상수 선생님, 남진우 선생님, 편혜영 선생님, 신수정 선생님, 안주철 선생님, 김언 선생님, 양근애 선생님 이영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98년 경기 하남시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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