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마지막 주다. 지난 1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연초에 세운 목표 중에 내가 이룬 것과 못 이룬 것은 어떤 것인지 묻고 답하는 셀프 코칭을 했다. 올해 내가 살아온 모습은 일개미였다.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그랬는데, 쉴 새 없이 일했지만 목표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에너지가 거의 소진돼 지친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찾아내는 생각습관 덕분에 올해 내가 이룬 것 10개는 적을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한국코치협회 전문코치 자격(KPC)을 딴 것이다. 대장암(2008년 진단)을 겪은 뒤 내 삶의 비전은 다른 암 경험자들이 암 진단 이전보다 나은 삶의 질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그 일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코칭이라는 '효과적인 무기' 하나를 갖춘 셈이다.
전문코치가 되면서 내년에 최우선으로 할 일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암 때문에 경력 단절의 아픔을 겪고 있는 암 경험자들을 위한 무료 코칭이다.
얼마 전 만성골수성백혈병 말기 경험자 A씨(52)를 만났다. 2004년 4월에 암 진단을 받았던 그는 2014년 이후 관해상태(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가 유지되고 있지만 지금도 표적항암제를 먹고 있으니 암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는 아니다.
"서른넷에 암 진단을 받아 죽네 사네 하며 살다 보니 어느덧 50대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기나긴 투병의 고통이 느껴졌다. 암 진단 이전 H그룹 계열 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일했던 그는 2년 뒤 복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만성골수성백혈병이 악화돼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A씨는 지금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건강이 회복됐지만 스트레스를 받아 암이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상근직 근무를 꺼린다.
이처럼 암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거나, 업무 공백으로 인한 자신감 결여, 암에 대한 부정적인 회사 분위기 등으로 자발적, 비자발적 경력 단절 상태인 암 경험자가 많다. 한 통계에 따르면 암 경험자의 70%는 경력 단절을 경험한다고 한다. 경력 단절은 암으로 인한 심신고통에 더해 자존감 상실이라는 2차 고통을 암 경험자에게 안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정부, 공공기관의 지원만으로 암 경험자의 경력 단절 문제가 해결되기 힘들다. 암 경험자 스스로 헤쳐 나갈 힘을 키워 줘야 한다. 내가 만난 수많은 암 경험자의 사례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임파워링하라'의 저자이자 한국 최초의 국제인증 마스터코치(MCC)인 박창규 리더십코칭센터 대표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무한한 자원(힘)을 갖고 있지만 평생 자신의 잠재력의 5~7%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암 경험자들은 투병 과정에서 크나큰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견디면서 사람의 끈질긴 생명력을 경험한다. 암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발휘되지 못했을 잠재력도 스스로 확인한다. 그걸 일깨울 수만 있다면 경력 단절이라는 인생의 장벽은 뛰어넘을 수 있다.
단 한 명에게라도 그런 기회를 내가 줄 수 있다면 암 경험자로서, 코치로서 내 새해 목표는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A씨는 전문코치가 되는 데 관심을 보였다. 대학 때 부전공이 심리학이었고 남의 얘기 들어주는 걸 좋아한다고 하니 멋진 코치로 50대 이후의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